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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May 16. 2021

낮은 자존감,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니까

승리의 경험, 성취의 기억이 없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에 관하여

10대 때부터 긴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건,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니까 약 4년 전입니다. 하지만 이전부터... 아니, 이전에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오히려 어릴 때는 내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나 매체가 없었기 때문에 더 심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울증에 관한 인식 또한 그때는 지금보다 좋지 않은 편이었기에, 가끔 '너무 우울하다'라고 말하더라도 주변에서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을 제외하고는 혼자 먼 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목적지도 걷는 이유도 알지 못하는 채로 홀로 걷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낮은 자존감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목표 때문에 스스로 나에 대한 기대치는 올라갔지만, 정작 뚜렷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만 쌓이는 나날을 보냈던 듯합니다.


최근 몇 년을 제외하고는 혼자 먼 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목적지도 걷는 이유도 알지 못하는 채로 홀로 걷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문제는 낮은 자존감 자체라기보다, 낮은 자존감의 여파였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존감이 낮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걸 제대로 조절할 줄 모르고, 그야말로 어찌할 바 모르면서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반복하면서 살아왔던 것이 더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실망 또한 너무 큰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어쩌면 내가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이 그런 이유일 수도 있다는 결론을 최근 내렸습니다. 기대하지 않는다면 실망 또한 없을 거니까요.


평생 '무엇 하나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이뤄놓은 것도 없다'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 지내다 보니 오히려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콤플렉스를 넘으려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찾아야 할 테죠.


지나친 실망 또한 너무 큰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어쩌면 내가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이 그런 이유일 수도 있다는 결론을 최근 내렸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잘못된 방법으로 스스로를 너무 괴롭힌 것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아니라도 나를 미워하고 채찍질하려는 사람들은 어디선가 만나기 마련인데, 나마저도 스스로에게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진 거죠.


나와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스스로를 잘 달래 가며 지내는 사람도 많다는 걸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난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자신을 미워하고 '왜 이것도 못 하느냐'며 자책할 필요가 사실 없었던 걸 너무 늦게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스스로와 화해하며 지내보려고 합니다. 내 우울과 불안이 어디서 온 것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만큼, 지난날의 내가 나를 괴롭히며 자책에 시달렸던 것 또한 돌아보고 있습니다. '조금 서툴러도 된다'라는 말은 이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식상한 표현이기도 하죠. 하지만 정작 저는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너무 해주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승리한 경험, 성취한 기억이 없더라도 삶은 살아가야 합니다.


살면서 승리의 경험을 쌓거나 큰 성취를 이룬 기억이 거의 없었습니다. ‘왕년에 잘 나가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나’라고들 하지만, 내겐 ‘왕년의 잘 나갔던 시절’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난 최근 몇 년 전까지는 늘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 NPC 같은 삶을 산다고 평생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승리한 경험, 성취한 기억이 없더라도 삶은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 지난한 하루가 반복되더라도 누구에게나 결국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일 거예요. 허무함과 무기력함이 일상을 축축하게 적셔 좀처럼 마르지 않더라도, 발을 옮기고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우울에 대한 콘텐츠는 아니지만,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제목을 듣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심해진 이후엔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나의 일상’이라는 생각에 너무 부담되는 일은 포기하거나 도망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젠 우울증으로 인해 좁혀놓은 일상의 울타리를 다시 넓혀가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쉽지도 만만하지도 않지만, 울타리를 한 뼘 넓히려고 할 때마다 다시 불안과 우울이 습격해오기도 하지만, 천천히 다시 해나가보려고 해요.


예전에는 내가    없는 시시한 사람이라는  무척 싫었고, 모두 하나쯤 가진 트로피도 이룬 것도 없는 삶의 궤적이 평생의 콤플렉스였습니다.


이제는 그런 나와 조금은 화해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은 나 말고도 이미 충분히 있을 겁니다. 굳이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최근 생각을 바꾸는 중입니다.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보내야 하고, 내일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또 밝아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때로 발 밑이 진창 같은 느낌에 괴로워도 그 점은 변하지 않으니, 결국 내가 나를 달래 가며 잘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에게 가끔씩은 말해주려고 합니다. '괜찮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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