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바닥에서 빠져나온 이야기
2024년 4월말 점심시간 아내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해봅니다.
"자기.. 나 사실 좀 힘들어"
차분하고 감정의 기복이 없고 내면이 단단하다고 믿었던 저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의 모습을 좋게 봐줬던 아내에게 처음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번아웃이 오더라도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저에게도 진짜 번아웃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고 더이상 숨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혼자 속으로 끙끙 앓기보다 진짜 내 편인 아내에게는 솔직하게 얘기하며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의 힘듦을 외면하기보다 직면해서 극복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때 당시 저의 힘듦의 근본적인 원인은 회사내에서 연차에 비해 업무능력 부족으로 생각하며 야근을 통해 제 실력을 키우는 것만이 극복방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제 실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그렇게 힘들다는 감정이 우울감으로 변하고 급기야 무기력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오게 됩니다. 사실 초반에는 우울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꾸준히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성장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계속해서 노력하다보면 다시 원래의 나로, 열심히 살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거야 라며 계속 저를 다그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계적으로 출퇴근 하는 좀비가 되어갔습니다.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졌고 회사에서 눈치를 엄청 보면서 내가 맡은 일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어도 질문조차 못하고 도움도 못 구하는 상황을 겪으면서 회사안에서 나는 1인분도 못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연차만 쌓였지 팀에 민폐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부장님께 작은 용기를 내어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부장님은 사내에 있는 상담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아볼 것을 조심스럽게 권유해주셨고 저 또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을 이용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여러차례 받아도 나아지는 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고 얼른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담으로 내가 극복을 해내지 못하면 정신과 진료까지 해야한다는 불안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저의 예상대로 상담사 선생님께서 마음건강 클리닉 진료를 권유해주셨고 저는 '이제 정말 갈 때까지 갔구나..' 라며 풀이 죽은 마음으로 진료예약을 잡고 내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전문의 선생님께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듣게 됩니다. 약 처방까지 받으니 '아 나 진짜 이제 약 먹는 우울증 환자구나'라는 꼬리표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전문의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지금 나의 뇌가 많이 망가져있으니 약물을 통해서 치료를 해야된다라는 말에 납득이 됬고 희망을 가져보게 됬습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쉽지 않더라고요. 약을 먹긴했지만 제 스스로 저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인지 회사만 가면 저는 눈치만 보는 쭈구리가 되었고 웃음도 잃고 좋아하던 술자리도 가시방석인 느낌으로 앉아 말도 없이 가식적인 리액션만 하다 집에 돌아오게 됬습니다. 가끔씩 귀가길에 펑펑 울음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아직 와이프가 오지않은 시각 텅 빈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음이 터지기도 했고 화장실에서 샤워하다 눈물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 괜찮은 척 보이려는 내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고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자책감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아내 몰래 울기도 하고 가끔씩 어떤 날에는 아내 앞에서 울기도 했네요. 그리고 점점 아침이 괴로워지고 몸은 회사로 향하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가기싫다 가기싫다 가기싫다 쉬고싶다' 하루에도 수백번 씩 외친 것 같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회사 게이트를 통과하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나면서 눈 앞이 흐려지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보안직원분이 119 불러주셨고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몸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놀랬습니다. '나.. 공황장애인가..?' 그 날은 수액을 2시간 정도 맞고 출근하지 않고 퇴근을 하였습니다. 이 날 집에 가는 버스에서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이 되서야 퇴근하던 나였는데 남들 한창 일할시간인 오전 10시반에 버스에 몸을 싣고 집에가고 있는 저 자신이 참 처량해보였습니다. '나 회복할 수 있을까?'라며 미래가 점점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와이프의 권유로 쉬어보는게 어떠냐는 질문에 처음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와이프의 "진짜 쉴 수 있으면 쉬고싶어?"라는 질문에 저의 대답은 "쉬고싶다"였고 저는 2025년 6월1일부로 병가를 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병가를 쓴다는 건 단순히 쉬는게 아닌 본격적으로 제대로 치료에 전념하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결정하기까지 수백번 갈등하고 눈치도 보였지만 저를 위해서 그리고 아내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회복을 해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휴식기를 가져봤고 가만 생각해보니 살면서 지금까지 길게 쉬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행 한 번 길게 가 본 적없고 그동안 성장을 목표로 끊임없이 자기계발하고 저를 밀어붙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쉬면서 약도 제대로 챙겨먹고 의사선생님 말씀대로 런닝을 매일 꾸준히 30분이상씩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안가니 끼니를 직접 해결해야되는데 맨날 사먹을 수 없으니 식비도 아낄겸 집에서 요리를 시작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 둘씩 해나가다보니까 자신감이 붙었고 급기야 산속을 달리는 트레일런닝에도 도전해 완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정말 오랜만에 펜션에서 바베큐를 구워먹으며 와이프랑 찐웃음과 함께 기분좋게 취할 때까지 달렸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전날 과음으로 약간의 두통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펜션 근처 계곡을 조용히 혼자 산책하며 '아 정말 행복하다'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일주일 뒤 장인어른 환갑여행으로 제주도 가족여행이 예정되어있었습니다. 저는 여행내내 스마트폰 영상속에 가족들을 담아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2박3일의 여행을 약 1시간짜리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어 장인어른께 깜짝 선물로 유튜브 링크를 전달드렸습니다. 가족들 모두 소중한 추억이 만들어진 것에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셨고 저 또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며 저의 자존감도 스멀스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다시 사람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속으로 존경스럽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만 하고 연락은 못했던 사람들을 이렇게 회사를 쉬면서 시간이 많을 때 직접 찾아뵈야겠다고. 조심스럽게 용기내어 연락을 드렸는데 몇몇분께서는 거절하시기도 했지만 90% 이상의 사람들이 저를 만나주었고 저는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사람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고 이제는 오히려 우울증 걸리기 전의 나보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해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제가 하고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고싶은 걸 즉시 행동으로 옮겼고 2025년 9월부터 리드투리드(readtolead) 1인사업자가 되었습니다. 불과 약 2개월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