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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살, 학교에서 똥 싸는 건 처음이라.

by 선물

똥, 쉬, 토 3형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는 순간부터 친숙해지는 3형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모두 잘 들으세요. 물티슈 뚜껑을 닫으면 이런 소리가 나요. 딱, 하고. 모두 들었나요?”

“네! 저 들었어요!”

“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저도요!”


나는 물티슈 뚜껑을 닫는 방법을 가르치는 중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중하고 있었다. 한 명 빼고.


“선생님, 응아 마려워요.”


우리 반 태영이는 열심히 수업 중인 나에게 와서 응아가 마렵다고 했고, 나는 태영이를 화장실로 보냈다. 태영이는 엉덩이를 붙잡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네모의 꿈 부르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선생님 잠깐 나갔다 올게요.”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고 태영이를 살피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태영아, 똥 다 쌌어?”

“선생님! 내가 얼마나 불렀는 줄 알아요?!”


태영이는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을 벌컥 열고 내게 소리쳤다. 바지와 팬티를 벗고 변기에 앉은 채로.


“다섯 번이나 불렀다고요!”

“그랬니.”


태영이의 눈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마 내가 태영이를 바라보는 눈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한 사람은 없지만 원망하는 사람만 있는 희한한 상황이었다.


“똥 닦았어?”

“아니요!”

“왜?”

“휴지가 없어요!”

“그럼 저건 뭘까?”

“휴지요.”


나는 이왕 데리러 온 거 휴지까지 뜯어주기로 했다. 나는 휴지를 뜯어서 닦기 좋게 개기까지 해서 태영이에게 건넸다. 태영이는 그걸로 자기 똥을 닦고 나에게 휴지를 내밀었다.


“짠!”


순식간에 시력이 뚝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주변 모든 게 흐릿하게 보였다.


“보여주지 말고, 변기에 넣어.”


나는 새 휴지를 뜯어 다시 건넸다.


“더 닦아.”

“짠!”

“보여주지 마.”


시력이 네 번째 떨어졌을 때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들이 몰려왔다. 수업 시간이 끝난 것이다.

호기심 많은 1학년 아이들에겐 똥을 싼 친구가 문을 활짝 열고 변기에 앉아있는 모습과 그 앞에서 선생님이 휴지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은 꽤나 흥미로웠을 것이다.

순식간에 3명의 아이들이 우리 주변으로 모였다.


“똥 닦는 거 구경하지 마세요.”

“왜요?”

“실례예요.”

“실례가 뭐예요?”


이런 식의 대화를 하는 사이 똥 닦기 구경꾼은 7명까지 늘어났다.


“쟤 뭐 하는 거예요?”

“똥 닦는 거야. 똥 싸서. 구경하지 말고 이따가 다시 오세요.”

“저는 혼자서 닦을 줄 알아요!”

“좋겠다.”


1학년들은 정말 말이 많다.


“태영이 다 닦았어?”

“짠!”

“보여주지 말라고 했지!”


태영이는 이제야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으면서 화장실을 나섰다. 나도 웃으며 화장실을 나왔다.

그래도 혼자 닦을 줄은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교사를 준비하며 우아하게 일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뒤처리를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

교대에서 배운 건 저명하신 교육 학자들의 철학과 여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수업 모형들이었지, 어린이를 돌보는 보육의 방법이 아니었기에.


내가 배운 지식과 현장에서 경험한 실무의 차이는 백두산과 한라산의 거리보다 멀었다.

출근하면 교과서와 지도서를 뒤적이며 수업을 준비하는 대신 배가 통통하게 나와 외투가 안 잠기는 아이의 외투를 잠가주고, 우산을 접지 못해 복도에서 10분째 낑낑거리는 아이의 우산을 접어주고, 자신은 손으로 먹는 게 더 좋다며 밥을 뜯어 먹는 아이에게 숟가락을 쥐여주는 내가 있을 뿐이다.


이곳에선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교과서로 하는 교육은 아니지만, 교육과정에 적힌 성취 목표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교실에서 교사가 반드시 해야 하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

읽으시는 분들에게 작은 즐거움이나 짧은 미소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겠다.


*본 글에 나오는 일화, 인물, 단체, 지역은 각색과 재구성을 거친 것으로 특정 일화나 특정인을 지칭하고 있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도 모두 가명임을 밝힙니다. 가벼운 소설이라 생각하시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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