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도 울 수 있고, 남자아이도 빨래 널 수 있고!
모든 게 순조롭다 생각했다. 남편도 일찍 퇴근했고 저녁도 잘 챙겨 먹었다. 아침에 운동을 못해 몸이 너무 찌뿌둥하여 30분만 걷다 오겠다 허락을 받고 옷도 다 운동복으로 입었던 상황. 역시, 하루가 평범히 지나갈 리가 없었다. (ㅠㅠ)
300ml 물을 들고 다니며 마시던 둘째는 결국 “엄마~ 나 물 쏟았어~~”를 외치며 소파 틈새 사이로까지 물을 흘려보낸 것이었다. 물팩을 받아 들자 250ml는 남아있던 것 같은 묵직했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다 쏟았구나.’
3-4인용 소파를 다 뒤집고 들러내야 했던 상황에서 남편도 슬슬 김이 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눈치 없이 소파를 치울 때마다 나오는 장난감 조각들에 환호했다. 결국 남편이 첫째에게 “저리 가 있어!” 하고 한마디 했는데 뭐가 그렇게 속상했던지 아빠를 고자질하며 내게 다가왔다.
얼마 전에도 친구의 “야!” 한마디에 자기를 혼내고 화내는 줄 알았던, 여린 마음의 첫째 아이. 오늘은 내가 다 지켜보고 있었기에 아빠가 화를 낸 게 아니고, 너를 싫어서도 아니고. 청소기를 돌리고 있어 주변 소리도 시끄러웠고, 그래서 더 소리를 크게 냈을 뿐이라고 알려주었지만 도통 울음을 멈추질 않았다.
갑자기 남편이 그런 아이의 나약한 모습에 화가 났는지 “그만 울어! 남자가 어?!!” 하며 소리를 빽 지르는 거다.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첫째한테 남자도 울 수 있다고 괜찮다고 해주었다. 엊그제 성 정체성과 관련된 아이 책을 들여다보았을 때 똑같은 상황의 이야기가 나왔다. 거기서도 ‘남자아이도 울 수 있어요’라고 말하라 했었다.
아이의 장난에는 한없이 괜찮다고, 오히려 잘 크고 있다며 격려하면서 유독 아이의 여린 모습과 울음에는 예민한 남편이다. 기질이 그런 걸 어찌하랴. 이 안에서 아이의 좋은 부분을 봐주고 칭찬해주어야 함을 배운다.
마음이 조금 풀리고 엄마빠는 소파와 집정리에 한창 바쁠 때, 심심하다고 노래를 부르다 빨래를 널면 엄마가 빨리 놀아줄 수 있다는 말에 야심 차게 아이들은 실행으로 옮겼다. 나중에 보니 티셔츠는 뒤집혀 널어져 있지, 아빠 티셔츠는 꼴랑 빨래집게로 겨우 걸려있지, 그래도 야무지게 양말들은 세트로 착착착 걸어두고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남자이지만 집안일을 돕는 아이, 그리고 남편은 언제나 고맙다. 남자라서 여자라서가 아니라 우리는 각각의 존재로서 귀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