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가계부
이스트팩. 아마 우리가 학교 다니던 1990년대 후반부에서 2000년대 초에 한참 메고 다니던 가방이었던 것 같다. 잔스포츠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등하굣길에 자주 마주쳤던 가방 브랜드다. 나는 오히려 중고등학교 시절 보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이 브랜드를 선택했다. 백팩을 메고 구두를 신는 패션으로 대학교를 누비고 다녔다. 그냥 그게 뭔가 당당하고 멋져 보였다. 그렇게 열심히 메고 다닌 가방이 다 해져 새로 산 가방이 이 것이었다. 아마 10년은 넘지 않았을까.
어느 날 아이들과 산책을 가려는데 남편이 내가 멘 조그만 백팩을 보며 비아냥거린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내 옷차림새가 아주머니스러워 보였는지(나도 아줌마인데) 그 가방 말고 다른 건 없냐 물었다. "왜?! 나 이거 엄청 좋은데?!"하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뭔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듯한 그의 눈빛에 옷장을 뒤져 이 가방을 찾아냈다.
"찾았다!!!!!!"
평소였으면 서울 갈 때 면세점을 구경하며 백팩을 하나 사 냈을 거다. 그러나 내가 떠올린 가방을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남편에게 돈을 안 써도 된다고 뿌듯해하며 이제 이 가방을 열심히 메고 다녀야지 자랑했다. 지난주 서울에서 1박 2일을 보낼 때에도 노트북과 여벌로 준비했던 조끼 등 필요한 것들을 쏙쏙 담아주는 가방이 고마웠다.
그런데 제주로 돌아오는 날 가방을 메려고 봤더니 갈색 점점이들이 보였다. 이게 뭔가 싶어 다시 들어다 봤는데 지퍼 손잡이의 끈이 삭아버린 것이었다. 집에 와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새 가방을 하나 사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가위로 잘라 버리면 되겠네!" 하는 그의 말에 옳다구나 가위를 가져와 잘라냈다. 문제는 가방 맨 위의 손잡이 부분이었다.
이 일을 우얄꼬. 겨우 가죽을 자르긴 했으나 단단한 박음질에 막혀 떼내지 못하는 상황. 이 상태로 가방을 메고 다닐 수는 없었다. 남편이 그냥 제발 하나 사라며. (ㅎㅎ) 그런데 가방이 너무 쓸만해 아까웠던 나는 결국 맘카페를 통해 수선집을 찾아내고 수리를 요청했다. 단돈 5천 원으로 군더더기 없는 나의 반듯한 가방을 다시 만들어냈다.
유행을 타는 가방인가 싶어 검색했는데 다행히 최근에도 고현정이 이스트팩 백팩을 들어 화제가 되기도 한 브랜드였다. 이 기사를 확인하고 괜한 안도감을 느꼈다. 워낙에 패션 센스도 없지만 유행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10년 전 소비를 칭찬하며. 결국 평범하게 흘러가는 나의 인생처럼 분수에 맞는 이 가방이 나는 매우 흐뭇하고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