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재취업 성공을 응원하며!
"오늘 점심에 약속 있니?"
실업급여를 받는 중인 아빠는 나에게 가끔씩 점심을 먹자는 제안을 하신다. 그러나 그때마다 안 되는 상황이 많았고, 글쓰기 수업, 요가 수련 등 전화를 못 받는 중에 걸려온 부재중 전화는 대부분 ‘내사랑 울아빠’였다. 10번 중 9번은 거절이었던 아빠의 번개팅이 드디어 성사된 어느 날이었다.
집 근처 정식집에 먼저 들어가 주문을 하고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가 오시자마자 음식이 나왔고 미식가이자 대식가인 아빠는 밥도 리필하며 맛있게 드셨다. 아빠와 밥만 먹고 헤어지려고 했는데 2차를 제안하셨다.
"후식으로 커피 마실래? 아이스크림 사줄까?"
뭔가 거절하지 못하겠는 분위기에 차를 마시자하고 바로 옆 카페에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보니 아빠를 만난 지 20분 밖에 되지 않았다.
모처럼 이야기꽃을 피우시는 아빠를 보며 이 순간은 아빠께 집중하자고 마음을 바꿨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대화는 편했으나 얕았고 오히려 아빠와의 대화가 진솔하게 오갈 때가 많았다. 아빠가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많지 않았음에도 카풀하며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거나 학교로 데리러 오는 날은 신이 났다. 아빠에게 학교 생활에 관한 얘기든, 미래에 대한 얘기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아빠는 내 말을 성심성의껏 들어주셨다. 미주알 고주알하시는 아빠 모습에서 학창 시절의 내가 보였다. 그렇게라도 아빠를 더 붙잡고 싶었던 마음이 이제는 나를 더 붙잡고 싶어 하시는 아빠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빠가 궁극적으로 나를 보고 싶어 하신 이유도 있었다. 워크넷을 통해 관심 가는 직장을 찾았으니 입사지원을 부탁하시는 거였다. 귀찮은 마음이 들었지만 아빠의 얘기를 계속 듣고 보니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아빠는 나이만 들었을 뿐 아직도 열정은 청춘이셨으니까.
아빠는 부잣집 막내로 태어났다. 그러나 할머니가 아빠에 대한 애간장이 타 돌아가셨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철이 빨리 들지 않으셨었다. 30대 후반, 신문사에서 일을 하려 했던 아빠는 사장님과도 친분이 있었지만 아빠에 대한 소문이 안 좋았기 때문에 아빠를 거부했다고 했다. 경비원이 나가라고 해도 아빠 혼자 5일째 출근하던 날 결국 사장님이 불러 야단을 치고는 알아서 그만두겠지란 생각으로 제일 힘든 곳으로 아빠를 보냈다. 신문배달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든, 비가 오든 상관없이 밤마다 배달해야 하는 일이 매우 고됐다고 했다. 신문 대금을 받으러 가면 동네 사람들이 아빠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누구네집 아들, 저 사람 오래 못 버틸 거다'라는 얘기에 아빠는 사람들이 얼마나 본인을 가볍게 봤었는지 부끄러워 더욱 열심히 일하셨다고 했다. 3개월, 6개월, 1년이 지나가니 사람들도 아빠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아빠를 긍정적으로 보고 시작했다고. 배달을 하면서 배달뿐만 아니라 광고도 도와주며 영업까지 하신 아빠는 결국 2년 만에 초고속 승진을 하셨다. 간부회의가 있던 어느 날 제일 뒷자리에 앉았는데 사장님이 화난 목소리로 직원들을 질책하다 "저기! 저 과장 보세요! 제가 저 사람이 누구 조카라서 승진시킨 줄 압니까? 본인의 일 뿐만 아니라 광고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잖아요!" 하며 아빠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와 숨죽여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고 하셨다.
아빠의 진심이었던 젊은 날이 고스란히 내 가슴으로 전해졌다. 나까지 눈물이 차오르려는 걸 겨우 참았다. 집에는 관심도 없고 밖으로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아빠라는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 얼마나 아빠도 아빠의 인생에서 인정받고 싶으셨을까. 부단히 애쓰며 걸어온 길, 중년의 삶도 씩씩하게 나아가시길 응원하고 싶었다.
하루종일 고민하셨는지 다음날 아침, 내게 아빠의 자기소개서가 적힌 메시지가 왔다. 거의 수정할 것도 없이 아빠는 본인의 장점을 깔끔하고 담백하게 담아내셨고, 나는 첨부 양식에 맞게 이력서를 만들었다. 문의사항이 생겨 전화를 드렸더니 담당자가 없어 이름과 나이를 묻고는 나중에 전화 주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는데 채용 모집이 끝났다고 하는 거다. 아빠와 나는 너무 황당했다. 여전히 모집 중인 워크넷의 공고를 보면서 고생한 노력이 아까워 입사지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결국 나이가 문제인가 싶어 허탈해진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아빠는 오늘 아침에도 내게 이력서 5장만 출력해 달라는 요청을 하셨다. 종이 한 장으로 담아낼 수 없는 아빠의 65년 인생이 어디에 뿌려질지 모르겠지만, 부디 아빠가 다시 힘을 내실 수 있는 곳으로 가 내려앉기를. 보람된 일을 하며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