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간 사라질지도 모르는 사람이야

by 우리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조심스레 부모님과의 만남을 제안했다. 사실 장기연애를 한 커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안게 된다. 부모님과의 인사. 그만큼 오래 만났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는지 궁금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몇 년 동안 명절마다 간단한 선물을 주고받기도 했고, 최근에는 생일과 부모님 생신까지 챙기면서 사실상 인사를 안 드리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상황이었다. 그 또한 부모님의 성화를 막느라 마음이 편치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나는... 늘 한발 물러서 있었다. 나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가정사를 안고 있었고, 현실적으로 결혼 또한 고려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었던 건, 그 역시 비혼주의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가 부모님과의 인사를 구체적으로 제안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 사이가 정말 진지해졌구나. 이제는 서로의 미래를 함께 그려야 할 때가 왔구나.’


하지만 동시에, 나는 무서웠다. 나는 언젠가 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라 확신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끝은 결국 그 방향일 것 같다는 불안과 체념이 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두려웠다. 누군가를 내 곁에 두고, 내 삶에 더 깊이 들일수록, 내 세상이 넓어질수록, 그만큼 나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도 많아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그 모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나는 언젠간 사라질지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 말 자체가, 그에게 큰 상처가 될 거란 걸 알기에.


그 무렵, 나에게 큰일이 벌어졌다. 오래전부터 나를 짓누르던 문제들이 마침내 현실로 터져 나왔다. 처음엔 괜찮을 줄 알았다. 그의 사랑이, 그의 응원이 나를 지탱해 줄 거라 믿었다. 우리라면 어떤 일도 함께 견뎌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버텨낼 힘이 부족했다. 생각보다 너무 아팠고, 쉽게 무너졌고, 미치도록 외로웠다. 나는 점점 내 안의 어둠과 마주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극심한 무기력과 공허함, 삶에 대한 회의는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점점 더 바빠졌다. 회사 일이 바빠졌고, 새로운 책임도 많아졌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기꺼이 그의 바쁨을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의 나는,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 요즘 너무 힘들어." 그에게 말하면, 그는 "그래도 잘 버텨봐야지." 하고 말했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무심한 그 한마디가 나에겐 서운하게 다가왔다. 그는 더 이상 나를 웃게 해주지 않았다. 아니, 그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그의 다정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가정사로 인해 결국 그의 부모님과의 인사도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실망하지 않는 척했지만, 그 일 이후 처음으로 “이 관계를 끝내야 하나”를 고민했다고 했다. 나도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런 내 상황에서 그를 계속 붙잡는 게 맞는 걸까? 그가 더 이상 지치지 않게 내가 그를 보내주는 게 맞지 않을까?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진짜 이별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일시적인 생각일 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 사이의 간극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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