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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했더니 더 못생겨지는 마법

by 푸른밤

화장. 메이크업.

공들여 돈을 들여 화장을 했더니 기절초풍하게 못생겨졌던 순간 중 최고를 뽑으라 한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내 결혼식날 화장을 1등으로 뽑겠다.

화장을 마치고 드레스를 입고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나는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결혼식은 해야잖나.

차라리 원래 내가 평상시에 하던 화장을 했더라면 백만 배는 났겠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급기야 결혼식 주례사 중간이었던가 한쪽 눈에 붙인 가짜 눈썹이 덜렁~ 하면서 반쯤 떨어졌다. 조신하고 얌전하게 꼿꼿이 서 있어야 할 신부였지만 나는 꿈지럭꿈지럭 장갑을 낀 손을 들어 반쯤 떨어진 가짜 속눈썹을 확! 뜯어내고 반대편 눈에 붙은 것도 과감하게 떼어 버렸다.

평생 처음으로 가짜 눈썹을 붙여 본 날이었는데... 어흑.




아기를 낳고 기르는 동안에는 하루에 한 번 세수나 겨우 하고 살았지 얼굴에 뭔가 찍어 바르고 그릴 여유도 목적도 없이 살았다. 매일 어느 멋진 사무실에 잘 차려입고 뾰족구두를 신고 출근을 하는 여자였다면 유행에 걸맞춰 알맞게 꾸미는 데에 뒤처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여하튼 나는 그런 여자의 삶을 살지 못했다. 나는 열심히 애를 키우고 밥을 하였다.




2020년 2월부터 2022년 봄까지. 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에서만 지냈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주지사가 티브이에 나와 제발, 절대로 밖에 나오지 말고 집에 좀 있으라 읍소를 하고 밤에는 통행금지 시간도 있던 적도 있고 어떤 시기에는 다른 주로 여행도 당분간 금지한다 막 그랬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기이한 현상에 마음이 짓눌려 이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꼼짝도 안 했는데

시간이 점점 지나다 보니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생겼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무척 편안해졌다. 세수도 안 하고 지내는 날도 많았고 겨우 양치질이나 하면서 살았다.

외출을 하지 않으니 외출복이 필요 없고 마스크가 얼굴의 대부분을 가려주니 화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육아도 벗어났고 전 세계적인 역병도 거의 다 물러간 것 같아서 이젠 그럼 다시 화장도 하고 옷도 갖춰 입고 예쁘게 하고 다녀볼까 하고 거울을 봤더니 늙고 낡은 중년 여인이 나를 쳐다본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눈썹도 그리고 립스틱도 발라 봤는데 화장을 마치고 한걸음 떨어져서 거울을 보니

너무 웃 기 다 웃 겨

다섯 살짜리가 엄마 화장대에서 몰래 장난치던 기괴한 몰골이다.

트렌드를 읽어보려 중년 여자 화장에 대해 유튜브에서 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런 비디오를 봐도 화장 전보다 화장 후가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화장하기 전 얼굴이 더 낫지 않아?' 이런 생각만 든다.

메이크업에 대한 감, 눈, 기준, 센스가 지난 몇 년간 다 변했다.

내 기준, 내 취향, 나의 센스도 다 변했다.

화장. 내 얼굴에 내 손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바르고 그리는 것이지만 조금 연구, 공부해서 얹어줘야겠다.


노력해야 하는 일들이 사는 동안 끝이 없다. 아휴.


Photo by Tilawwed on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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