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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Dec 26. 2018

두 발로 걷는다

아직 좀 무섭지만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엔 두 발로 걷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글도 썼었다.

동네방네 D-day는 크리스마스야 라고 말을 해 놓아서 크리스마스엔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걸어야만 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나는 두 발로, 두 다리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직립 보행이 얼마나 대단, 위대한 일인지 몰라도 된다. 그리고 그 직립보행이 가져온 인간의 발달 등등에 대한 연구 같은 걸 해보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나처럼 한번 다쳐보면 곧바로 알게 된다.

직립보행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소중한 일이다.

그래서 다친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선천, 후천적, 타의, 사고, 불운, 실수 등등 이 세상의 모든 경위를 통해서 지금 현재 몸이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중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고 고쳐지는 사람들이 아닌 영구적으로 손상을 입어서 자유로운 몸놀림을 다시는 회복 못할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고 반백살을 바라보는 이때까지 어디 한 곳 다친 적도 없이, 꿰맨 적도 없이, 흉터 하나 없이 무탈하게 잘 살아왔던 내 육신에 대해서. (물론 이제는 기다랗게 생긴 용맹한-흉측한 지렁이 모양의 상처를 얻었지만)


지난 몇 개월의 투병(?) 기간 동안 흔들리는 내 정신을 잡아준 몇몇 위로 중에서 '갑'은

어쨌거나 너는 시간이 지나면 다 낫지 않겠니


라는 말이었다. 정말이다. 이 말은 참으로 큰 위로를 가져다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치유의 길에서 멀어지는 병도 수두룩하고 곰곰이 따져보면 아주 많은 질환의 경우 시간은 환자의 편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 나는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괜찮아지는 어려움이니 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격려였던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위로로 마음에 안정을 찾다가도 같은 위로가 전혀 통하지 않을 '영구적 장애'를 입은 사람들에게 내가 이제껏 살면서 실수한 적은 없었을까 거의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생각을 많이 했다.

지난날 내가 몸담았던 직업상(?)의 이유로 나는 아픈 사람들, 노인들, 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을 만나야 할 많은 기회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주제에  위로를 한답시고 매번 아무 말 대잔치나 하고 돌아다녔던 것은 아닐까 곰곰이 되씹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좀 괴롭혀 보기도 했다. 

알지도 못하니까 그다지 거슬리는 말을 했을 리는 없을 듯싶지만

알지를 못하니 그다지 마음에 와 닿는 격려나 위로도 못했을 듯싶다. 그건 사실일 것이다.


그런 자책의 시간을 지내다가 조금씩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는 이런 생각으로 넘어갔다. 반백년, 이제껏 나를 옆에서 보살펴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

먼저는 엄마. 낳아서 키우고 살피고 돌봐서 상처, 흉터 없이 보호해 준 엄마에 대한 감사.

그 이후엔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남편에 대한 감사.




아프기 전엔 보이지 않던 새로운 현상들

세상엔 계단이 참으로 많다

두껍든, 짧든, 못났든, 길든, 휘었든, 얇던, 종아리에 알이 볼록 나와있던 없든, 뭐든 간에 튼튼한 다리는 축복

사람들은 참 빨리 걷는다

사람들은 목발이나 지팡이 잡은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 사이의 틈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 거기 빠질 것 같아 무섭다 (물론 그럴리없다)

물기가 있는 바닥은 미끄럽다 (그걸 몰랐냐)


향후 나의 다짐과 결심

운동한다. 그게 뭐든.

남편과 꼭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다닌다. 남들이 욕을해도, 비웃어도 꼭꼭 잡고 다닐거다. 가끔 쇼핑몰 같은 데서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다니는 것을 볼 때 '아 저분들은 정말 사이가 좋은가 봐' 그런 시각으로만 봤었는데 이젠 나에게 다른 시각이 하나 더 생겼다. 서로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것 같다. 서로의 지팡이 같은 역할. 손을 잡고 다니면 둘 다 보호가 된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더 의지하시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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