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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Feb 11. 2019

뒷좌석에 우는 아이가 탔다

심지어 그 작은 발로 내 등받이를 불규칙적으로 걷어차고 있다

비행기표를 구입할 때 내가 고려하는 몇 가지는

1. 창가 쪽보다는 복도 쪽

2. 가족이 다 같이 움직일 땐 한 줄로 쪼르륵 앉을 수 있게

3. 화장실과 먼 좌석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아기 엄마들이 선호하지 않을 위치의 좌석. 그렇다! 나는 그 좌석을 골라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좌석을 고르기 위해 우선 나는 내가 11개월짜리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아기 엄마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좌석 배치도를 연구한다.

'흠....... 나라면... 내가 아기 엄마라면...... 여기! 그래, 여기에 앉는 것이 좋겠어.'라고 좌석을 고른 뒤

골랐던 좌석으로부터 될수 있으면 멀리 떨어진 좌석으로 내 진짜 좌석을 잡는다.

그리고 탑승할 때까지 하늘에 빌고 빌고 또 빈다. 제발.... 주변에 아기들이 없기를. 적어도 뒷자리 승객들은 '어른들' 이기를. 제발. 하늘이시여.




이번 한국 방문은 정말 순식간에 결정 났고 비행기표도 눈 깜짝할 사이에 결제를 했다.

일정이 임박했기에 찬찬히 검색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복도 쪽 좌석+화장실에서 먼 좌석을 잡는 것은 성공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은 언제나 막히고

빠듯하게 도착한 공항은 언제나 붐비며

탑승을 기다리는 줄은 언제나 길고 느릿느릿 짧아진다.

여하튼 내 자리를 찾아 기내 가방을 캐빈 안에 넣고 내 물건들을 야무지게 모아 쥐고 자리에 앉아 깊은 한숨을 쉬었다. 승객들의 80% 정도가 탑승을 마친 상태였다.

내 오른쪽 옆자리 두 사람은 다행히 모두 '성인들'이었다. 앞자리도. 그리고 복도 건너 왼쪽 옆자리도 모두 모두 '어른들'이었다. 뒷좌석을 흘낏 보니 내 바로 뒷자리와 그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별 일이야 있으려고.

아기와 그 부모들이 선호하는 좌석들을 살펴보니 이미 거긴 작은 유아방이 오픈된 듯 몇몇 가족들로 웅성거리는 중이었다. 그 주변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라고 생각했었는데. 흑흑.



한국으로 오는 열몇 시 간 중 내 뒤에 앉은 아기는 열몇 시간 동안 울거나 보채거나 찡찡거리거나 소리를 질렀다. 당최 이 아이는 잠도 자지 않았다. 울 때는 발버둥도 같이 쳤는데 그럴 때마다 내 등받이가 쿵쿵 울렸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헤드폰으로 간신히 아이의 울음소리를 막고 겨우겨우 눈이라도 좀 붙여 볼까 시도하던 내 등을 그 작은 발이 끊임없이 통통통 통통 걷어차고 있었다.

두통으로 일그러진 미간을 겨우 펴고 간신히 눈을 떠서 실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니 내가 타고 있는 이 비행기는

이미 글러먹은, 틀려먹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그런 비행기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어린 아가, 아기들을 데리고 인천으로 가는 한국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심지어 아기를 데리고 인천으로 가는 중국인들도 많았다. 그냥 평범한 수요일 오전 비행기였다.

어차피 좌석을 고를 시간이 많았더라도, 좌석 배치도를 보고 요리보고 조리 봤더라도 나는 절대로 이 아기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좌석 같은 걸 구할 수가 없는 날이었던 거다.


어떤 집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그나마 좀 잠잠하던 다른 집 아기가 덩달아 후렴구를 받고

배시넷에서 잠을 콜콜 자고 있던 멀쩡한 아기도 두 눈을 번쩍 뜨고 작은 주먹을 흔들면서 악을 쓰기 시작하는

돌고도는 물레방아 같은 혼돈이 영원히 계속되는 비행기 안에 내가 타고 있던 것이다.

나는 식욕을 잃었고(기내식을 먹지 않겠다고 처음 말해봤다. 이런이런)

내 달팽이관 역시 균형을 잃었는지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두통이 밀려왔다.




나도 엄마다.

나도 아기를 길러본 적이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어른답게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나도 엄마였고 나도 아기를 키워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화가 나고 참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덧붙여 나는 긴 비행시간에 심적인 압박을 받고 있던 '다리 골절환자'였다. 내 몸이 불편한 상태였다. 나도 악악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

아기들의 부모들- 특히 엄마들- 은 이미 넋과 혼이 나가 있었다. 그들이야 말로 엉엉 울고 싶은 표정이었다.

나도 안다. 그들이 어떤 심정인지를.

이해는 하지만 화도 났다. 두 가지 어울리지 않는 마음이 나를 피곤하고 괴롭게 만들었다.

옆 좌석 동유럽계 여자는 승무원에게 와인을 갖다 달라고 연신 요청하고 있었다. 나에게 눈을 찡긋하면서 '미안해. 내가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나도 지금 이렇게 할 수 밖엔 다른 방법이 없잖니'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혼돈의 비행기 안에서 서비스를 제공 중인 승무원들도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승객들은 예민하게 굴었고 뾰족한 어투로 원하는 것을 요구했다.

이 비행기 안에서 아마도 가장 평온한 공간은 기장과 부기장이 머무는 조종실일 것이 분명했다.



바라건대 누군가 이런 것도 개발해주면 참 좋겠다.

눈 한번 야무지게 질끈 감았다가 뜨면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순간 이동'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나 죽기 전엔 안되려나 엉엉) 비행기 타지 않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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