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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Aug 28. 2020

향미는 왜 굳이 코펜하겐이었을까?

드라마 여자 주인공도 아니고 그저 여자 주인공이 운영하는 술+밥집 종업원의 입에서

'코펜하겐 가려고'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 내 귀가 번쩍! 했다.

응? 코펜하겐? 거기가 어딘데? 

나도 그 도시의 이름이 생소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소한 네 글자. 코펜하겐.

차라리 드라마 속 술+밥집 여자 종업원 '향미'의 입에서 뉴욕이라든가 시카고, 엘에이, 파리, 로마, 런던처럼

흔히 들어본 도시 이름이 나왔더라면 코펜하겐이라는 단어처럼 귀에 딱 꽂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껏 살면서 흔하게 들어본 이름의 도시였다고 해서 그 도시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닐 테고 아무 때나 쉽게,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휙휙 가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랄까 귀에 익고 눈에 익어(글자로) 그다지 이질감이 들지 않는 외국의 도시들 이름들이 있잖나.

심지어 '향미'라는 여자는 코펜하겐과 1억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나 코펜하겐 가려고




굳이 코펜하겐이었던 이유는 별로 장황하지 않았다.

코펜하겐에 그녀의 남동생이 살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

왜 1억인가에 대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어떤 사람이 '미지의 세상'에 뚝떨어져 정착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막연히 예상하는 

마음속의 '초기 정착금'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또 궁금해졌다. 향미의 남동생은 어쩌다가 코펜하겐에서 살게 된 걸까.


세상에나. 이런 똥 멍청이 같은 궁금증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나는 왜 왜 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가 말이다. 물론 지금 내가 사는 도시는 코펜하겐이라는 도시가 주는 생소함 같은 건 조금도 없는 도시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서울에서만 평생 살아온 누군가에겐 전라도 나주시라든가 경상도 경산시 같은 도시가 코펜하겐만큼이나 생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법이 아니겠나.

어쨌거나 향미의 남동생은 코펜하겐에서 공부를 하는지, 공부를 마치고 일자리를 얻은 건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기서 살고 있는 '재외국민'인 거다. 나처럼.

그런 남동생이 있는 코펜하겐에 누나 '향미'는 1억을 갖고 가서 정착하고 싶었던 것.

입술 밖으로 소리를 내서 코. 펜. 하. 겐이라고 또박또박 속삭여봐도 여전히 생소한 도시. 그 코펜하겐에 가서

향미는 그간의 인생 자체를 'reset'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해 보였다.

왠지 그런 도시에서라면 그 '리셋'이 가능할 것 같은 기분. 내 과거의 행적을 아는 사람을 어지간해서는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도시. 코펜하겐.




'향미'가 1억을 가지고 코펜하겐에 도착했더라면 거기서 정착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엔 가능했을 것 같다. 다만 전제조건 하나를 붙이고 싶다.

향미의 '1억'을 동생 부부가 눈치채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 조건은 중요한 조건이다.

드라마 속 향미는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많은 경험과 아픔과 생존 방법을 깨우쳐버린 여자애다.

그런 생존력이라면 지구 상 어디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듯싶다.

코펜하겐에서 관광객으로 1주일을 지내본 나의 경험만으로는 향미의 '1억 원' 이 얼마만큼의 가치인지

가늠이 잘 안되지만 우선 숙식을 할 수 있는 곳을 구한 뒤 일자리를 찾으면 '정착'은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나는 코펜하겐 중심가 쇼핑 거리에서 한글로 쓰인 간판을 보았다.

그리고 구글링을 해보니 한인교회들도 꽤 많았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어느 '인도커리' 식당에서 우리 테이블을 담당한 서버는 한 달 전에 브루클린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방 한 개만 챙겨서 왔다고 했다. 그냥 무작정 왔다고 했다.


향미라고 못할쏘냐


말은 참 쉽구나.



*사진출처- 기념품샵에서 산 엽서를 찍은 것+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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