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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n 01. 2020

옆 집 사람들이 총을 가지고 있다

나만 총 없나


10년도 더 전에

레드넥(Redneck)들이 아주 많은 곳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레드넥이라는 단어 같은 건 별로 좋지 않은 의미라서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이걸 대체해서 딱 알맞게 사용할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요즘 미국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시위와 폭동의 소용돌이를 생생하게 중계방송해주는 장면을

보다가 곳곳에서 저 '레드넥' 들이 눈이 띄면 그렇게 밉살맞을 수가 없다.

다른 단어로 저 '레드넥' 들을 불러주고 싶지가 않다.


10년도 더 전에

그때 우리 식구가 살던 곳은 기혼자들을 위한 캠퍼스 안에 위치한 기숙사였다.

1층엔 거실과 주방 2층엔 방 2개와 화장실로 구성된 집 4채가 양 옆으로 쪼로록 붙은 그런 구조였다.

자연스럽게 쪼로록 붙은 네 가족들은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언제 나가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지금 옆 집에서는 밥을 먹는지 부부싸움을 하는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그런 집이었다. 목조로 지은 집이라 방음 같은 건 전혀.

우리는 이웃들의 집에서 대략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우리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한국말 모를테니) 다소 유리한(뭐가). 그랬다.


1,2,3,4번의 집들 중 우리는 2번 집이었다.

어느 가을날.

1번 집에 살던 전형적인 남부 출신, 이제 막 둘째 아가가 태어난 30대 중반, 이제 막 M자형 탈모가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파병도 다녀왔다던 'E'의 생일날이었다.

1,2,3,4 우리 모든 이웃은 그의 집에서 생일 축하 겸 잡담 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심히 나온 '총' 이야기.


1번 집- 총  두 자루 (권총으로 2자루- 하나는 베개 밑에 또 하나는 안 가르쳐 줌)

2번 집- 우리 집 (장난감 총도 사본 적 없음)

3번 집- 총 한 자루(권총. 침실 서랍에 보관)

4번 집- 라오스 난민 출신 가족 (총 없음)


아................. 왜? 여기는 학교 안 기숙사인데 왜? 왜?

2번 우리 집과 4번 라오스 가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왜 왜 연신 물었다.

1번과 3번 가족들도 우리 2번 4번 가족에게 되물었다.

아니, 총도 하나 없이 어쩌려고? 왜 총이 없어?


밤을 새워 토론해도 결말이 나지 않을 '총' 이야기라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화제를 금새 다른 곳으로 바꿨다. 그날 밤 나와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맘씨 좋고 넉넉하고 익살맞은 1번 집과

갓 결혼해서 히히낙낙 매일매일 꽁냥꽁냥하는 20대 중반 신혼부부 3번 집에

총이 도합 3자루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 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알게 되었다는

후회와 상심으로 진짜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자자, 그러지들 말고 우리 솔직하게 톡 까 봅시다.

자자, 각자 집에 가지고 있는 총들 좀 앞에 다 꺼내봐요.

만약 이런 제안에 다들 순순히 응해서 앞에 펼쳐 놓는 일이 벌어진다면(절대!!! 안 일어날 일이겠지만)

진짜.

나만 총 없는 거 아닐까

사람들이 괜히 남들 앞에서는 '아휴 무슨 집에 총이 있어요' 그러지만

베개 밑에, 옷장 안 쪽에, 서재 가운데 서랍속 나무 상자 안에

하나씩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오싹하다  



photo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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