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긴 뭐가 있어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비겁하다. 이 말은.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겁했고 언제나 비겁했다.
종교 사기꾼들이 주로 자주 이용한다. 이 말.
살면서 실제로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무당을 마주해본 적은 아직 없지만
옛날 어릴 적에 티브이 드라마 전설의 고향 같은 걸 보면 거기서 표독스러운 입을 '앙' 다문 무당이
눈을 모로 치켜뜨며 앙칼지게 고개를 획! 돌리면서 저 대사를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우우웅... 음.... 니가 모르는 뭔가가 있써!
그런 장면이 나올 때면 나는 속으로
글쎄... 무당 아줌마 표정으로 봐선 없을 것 같은데. 그냥 할 말 없어서 얼버무리는 것 같은데.
혼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을 이제껏 살아오면서- 허허헛, 반백년 정도- 현실에서 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몇 명
실제로 만나보니 어릴 때 막연히 '저 무당 아줌마가 말문이 막혀서 괜히 저렇게 말하는군'
생각했던 내 생각은 맞는 생각이었다.
니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이 말 안에는 '나는 니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다'라는 뜻이 포함된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모르고 나만 알고 있는 그것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어떻게 확신할까?
뭘 분명히 알고 있긴 한 것일까? 아니면 알고 있다고 맨날 맨날 스스로 믿고 확신하는 바람에 뭔가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만 알고 있는 것 따윈 애초에 없지만 내 앞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뭐든 한 말씀 부탁합니다' 갈구하는 너를 실망시킬 순 없으니 그저 점쟁이 뒷 문 열어놓는 모호한 말
니가 모르는 뭔가가 있어.
이렇게 말을 해서 큰 깨달음을 준 것처럼 얼버무렸을 수도 있겠고.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내 앞에서 저런 식으로 말을 하면
'다시는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을 사람' 카테고리에 착착 접어 넣어 둔다.
제발.
알면 아는 대로 최선을 다해 아는 만큼 설명하고
모르면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