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He is not my president

어떤 홈리스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by 푸른밤

대한민국 국적을 소유한 내가

저녁 내내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을 이토록 집중해서 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방인인 나에게도 무척 흥미진진하고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4년 전

아침 6시 25분에 Port Authority(반포 고속버스 터미널 같은 곳)에 버스에서 내려

헛둘헛둘 지하철 다운타운 방향 A/C/E 를 타러 뛰듯이 걷는 일을 매일매일 하면서 살고 있던

4년 전. 그 날. 트럼프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로 다음 날. 아침에.


He is not my president! not my president!

라고 목청 높여 외치는 노숙자 아저씨를 보았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 아저씨의 곁을 지나갔고 그 아저씨의 외침을 들었다.

4년 전 그 날에 나는 트럼프 씨가 당선되던, 클링턴 부인이 당선되던 나랑 무슨 상관이냐 라는 심정으로

살고 있었던 때라서 저런 외침이 그다지 맘에 와 닿지 않았다.

새벽 6시 25분에 그 아저씨의 옆을 지나치는 수만 명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불법체류자 일 것이 분명하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어느 빌딩 어느 사무실, 어느 식당, 어느 공장, 어느 퀴퀴한 공간에 처박혀

바퀴벌레처럼 종종종거리다가 파김치가 되어 어둑한 저녁에 다시금 여기로 올 것이 뻔 한 사람들이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내 인생과 연관된 일이 뭐가 일어나겠냐.

대부분 그런 삶. 대부분 이런 마음.

노숙자 아저씨가 참으로 사회, 정치 역학구조에 관심이 많군. 이렇게도 생각했었다.


"나는 캐나다로 이민 갈 거야."라고 미국 친구들이 한숨을 쉬며 말할 때도 나는 속으로 시큰둥했다.

글쎄..... 과연 너네들이 '이민'이라는 것을 갈 수 있을까?

(그들 중 아무도 캐나다로 이민 가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여기에 산다)

그럼 그렇지.



오늘. 4년 후.

엎치락뒤치락 혼란한 판세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 밤 잠은 다 잤다.라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잘 시간이 되면 자러 들어갈 것이다.

바이든 씨가 당선이 되든, 트럼프 씨가 다시 당선이 되든 그들은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 여전히.

다만 4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당선되어 4년을 이끌어가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나같이 하찮은 사람의 인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지난 4년을 보내며 깨달았고 '내 대통령' 이 아니라서 무관심하고 무지하게 살면 안 된다는 점을

깊이 체험했다는 것이다.


부디

잠자고 일어나면 지난 4년 동안 부끄러웠던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당선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별 별것을 다 측정해준다는  체중계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