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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상반기 회고글 - 첼로 & 에어비앤비 편

by 온느

올해 상반기에 시작했던 두 가지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다.


첼로와 에어비앤비인데, 상반기가 지난 시점에서 결과가 극과 극으로 달라서 비교해서 회고해보았다.


첼로, 새로 만난 썸남 같은 설렘이랄까..


첼로를 배우고 싶다는 것은 아주 오래 마음에 품어 온 꿈이었기에 처음 배울 때부터 엄청 설렜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그렇게 아련하게 고이고이 품어 온 마음에 비해 그리 재밌지가 않았다. 생 초보니까 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단순한 것밖에 없어서 당연했다.


그렇다고 해서 흥미를 잃거나 첼로에 대한 애정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이 지루한 초보의 과정을 보내야만 원했던 재밌는 걸 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불평하거나 ‘나랑 안 맞나’ 의심하지 않고 어떻게든 묵묵히, 이래저래 재고 따지지 말고 존버를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역시나 재미가 없으면 영 몸이 움직이질 않는 나의 성향으로 인해 따로 연습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아직 자세가 익숙하지 않아서 혼자 연습하면 괜히 잘못된 습관이 굳어질 수 있으니, 잘못된 자세를 잡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있을 때 연습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초반에는 사실상 2주에 1번, 1시간씩 레슨을 받는 것이 연습량의 전부였는데(즉, 한 달에 겨우 2시간?), 첼로를 좋아하는 마음에 비해 첼로에 투입하는 시간은 정말 극히 적었기에 스스로 조금 찔렸다.. 첼로가 지루할 수 있으니 사이드로 배우려 했던 피아노에는 정작 영혼을 갈아넣고 있어서 더더욱..


그치만 연습하러 갈 의욕이 정말 안 생기는 걸 어떡하나. 솔직히 말하면 연습할 게 정말 많이 없기도 했다. 너무 초보라서. 오히려 이렇게 부담 없이 해서 질리지 않고 즐겁게만 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3개월을 존버하고 나니 드디어 혼자서도 활을 잡는 느낌에 대한 감이 생겼다. 즉, 자세가 무너지면 스스로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는 활을 맞게 잡았는지 아닌지 몰라서, 레슨 시간마다 선생님이 매번 교정해줬다.


5개월차가 된 이제는 현을 누르는 손놀림과 활을 쓰는 것이 조금은 더 몸에 익숙해졌고, 나에게 맞는 첼로의 높이에 대한 감이 생겼다. 이것만 해도 큰 발전이다. 레슨 두 번째 시간에 선생님이 “지금 첼로 높이 괜찮으세요? 불편하지는 않은가요?” 라고 물어봤는데 “사실 편한지 불편한지 모르겠어요!” 가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고보면 보면 뭐든 내가 지금 맞게 하고 있는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생초보를 벗어나는 길에 이르는 것 같다.


그동안에는 연습을 거의 안 했지만, 이제 조금씩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그동안과 달리 연습량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절대적 연습 시간은 아주 적으나, 그래도 지금까지에 비해 상대적 연습 시간은 많이 늘렸다. 그랬더니 확실히 실력이 나아진 게 느껴져서 역시 악기는 연습만이 답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7월 출장을 다녀오는 바람에 이번주에는 거의 3주만에 레슨에 갔다. 그동안 연습을 멀리 했지만, 다시 만난 첼로는 역시나 너무 좋았다. 첼로는 피아노와 다르게 몸에 밀착이 되는 악기라서 뭔가 더 애정이 샘솟는 것 같다. 첼로 안고 있는 느낌이 너무 좋아…


첼로에 대한 애정은 피아노에 대한 애정과는 확연히 다른 설렘이 있다. 피아노는 소꿉친구로 만나 이 꼴 저 꼴 다 보고(?) 속속들이 알고 지낸, 오랜 정이 쌓인 남사친 같은 애정이라면, 첼로는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아직 같이 별로 한 것도 없고 모르는 것이 많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썸남 같은 느낌이랄까?! ㅋㅋㅋ


아직 서툴지만 레슨 갈 때마다 더 알아가고 싶고 더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는다. 첼로 너무 좋아…


전보다 첼로를 잡는 것도, 현 누르는 것도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드니까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올해 남은 시간 동안 첼로에 더 애정을 가지고 시간을 더 많이 투입해보려 한다.


에어비앤비, 하지 않아도 되었던 숙제


올해 초, 에어비앤비에 급 관심이 생겨서 강의도 하나 듣고, 매물을 구하려고 부동산도 꽤 다녔다.


수십 군데는 다녀봤는데 거의 대부분 부동산에서 당장은 매물이 없다고, 적당한 것이 나오면 연락을 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2, 3월까지 주말마다 부동산을 꽤 열심히 다니다가, 성과 없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부동산마다 반복하고 나오는 것이 지겨워져서 한동안 부동산은 가지 않았다.


뭔가 하기로 마음 먹으면, 당장 성과가 나지 않아도 ‘존버’ 하는 것을 잘 하는 편이고, 그렇게 해서 결국 초반의 정체기를 뚫고 성과를 이뤄낸 성공 경험이 많다. 그래서 이 정체기도 같은 방식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부동산에 가기가 진짜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4월에는 매물 구하기 일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시에는 피아노를 한참 열심히 하고 있던 중이라서, 일단은 이것에 집중해보자고 생각하던 때이기도 했다. 에어비앤비와 악기 배우기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으니 에어비앤비 프로젝트는 지금은 진척이 안 되겠다고, 잠시 홀드 상태로 두고, 피아노 루틴이 정착되면 다시 가동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5월초 연휴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부동산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집주인이 에어비앤비 하는 것에 동의하는 매물이 나왔는데, 보러 오겠냐는 것이었다. 원래 에어비앤비 동의 매물이 잘 안 나온다며 부정적으로 말씀하셨던 사장님이었기에 부동산 사장님도 ’이게 나오긴 나온다‘며 신기해하셨다.


바로 약속을 잡고 매물을 보러 갔는데, 위치도, 상태도 모두 다 대단히 나쁘지도 대단히 좋지도 않은 그럭저럭 적당한 매물이었다. 다만 월세가 보통의 빌라 시세보다 많이 높았다. 집주인이 에어비앤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자신은 월세를 많이 받을 목적으로 에어비앤비에 동의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의욕이 전혀 생기질 않았다. 일단 월세가 너무 높았기에 집주인과 월세 조정 네고를 해야 하고 (사장님도 네고는 가능할 것 같다고 하셨다), 주변 세대 동의를 받고, 주민센터 실사도 받고, 인테리어를 하고 등등 절차들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것들을 해낼 일이 까마득했다.


당시 회사 일은 한가한 편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내고자 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나, 지금 내 시간을 여기에 투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때를 기점으로 나는 에어비앤비 프로젝트를 접기로 했다.


그 전까지는, 하고 싶어도 매물이 없기 때문에 진척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물이 나올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존버하며 지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무언가 더 나아갈 수 있는 시점이 되었는데 아무런 행동을 취할 의욕이 들지 않고,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생각을 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걸 보고, 사실은 내가 이 프로젝트를 향한 간절함이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로젝트 성사를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이, 내가 여기에 실제로 들이고 싶은 노력보다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걸 안 하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굳이 그렇게 힘들게 해야 할 이유가 있나? 아니었다.


에어비앤비를 세팅할 때까지는 힘들지만 막상 세팅해두면 수익성이 좋다고는 하지만, 글쎄, 예약 관리도 해야 하고 시설 관리도 해야 하고 이런저런 품이 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주식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주식 수익성은 안정성이 조금 떨어지긴 하겠지만, 품이 거의 안 드니까. 에어비앤비 또한 공실 리스크가 언제든 있기 때문에, 냉정히 말하면 마냥 안정적인 수익원이라 할 수도 없다.


수익성과 별개로 그럼 ‘공간’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지금 나에게 있나? 에어비앤비로 세팅해 둔 공간을 나의 필요를 위해서도 쓸 수 있나? 생각해봤을 때 그것도 역시 당장 필요가 없었다. 모임 공간으로 쓴다거나, 혹은 나의 세컨 하우스처럼 쓰는 로망도 물론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로망일 뿐 지금 당장 없어도 그만이다.


들여야 하는 시간적, 정신적, 육체적 품은 큰데, 막상 지금 당장 나에게 크게 필요한 결과를 주지 않을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어서 에어비앤비는 깔끔히 접기로 했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그 전까지는 길을 지나다니며 부동산 간판을 볼 때마다 마치 숙제를 미뤄두고 있는 듯 불편한 마음이었다. ’이번주에는 부동산에 한 번 가봐야 하는데..‘ 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숙제를 숙제로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불편한 마음 또한 비용이었다.


하고 싶은 것, 즐거운 것만 하고 지내기에도 모자란 시간인데,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숙제까지 안고 살 필요는 없겠지.


나를 즐겁게 하고, 긍정적 영향을 주고,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계속해서 가져가고, 머리로는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마음이 끌리지 않았던 프로젝트는 죄책감이나 패배감 없이 쿨하게 정리한 상반기였다.


지금의 삶은 내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져 있어서, 실제로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차치하고 적어도 내 마음만은 부족함, 아쉬움, 불만, 초조함, 걱정 같은 부정적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만족스럽다. 무언가 더 바꾸거나 개선해야하겠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상황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이대로 계속 나아가도 괜찮다는 느낌. 그러면 된 거 아닐까? 감정이야말로 내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나침반이라고 믿기 때문에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때쯤엔 엄청나게 지치는 상반기를 보내고 번아웃이 왔었는데, 올해는 긍정적인 쪽으로 완전히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요즘 나의 1주일 루틴은 거의 회사-첼로-피아노-발레의 무한 반복이다. 단순하고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처럼 단조로운 일상을 흔들림 없이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밸런스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이제는 너무 절실하게 알고 있기에, 지금의 이 환경을 절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귀한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며, 매 순간 더 진심으로 즐거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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