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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ug 30. 2020

히키코모리의 재사회화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순간

시간과 걱정이 돈보다 월등히 많은 시기


올해 2월부터 일을 다시 시작했고, 그전까지는 프리랜서 에디터로 지냈다. 말이 프리랜서지, 백수나 다름없는 시간들이 많았다. 수입이 1원이라도 있으면 프리랜서라는 생각으로, 곧 죽어도 있어 보이는 걸 포기할 수 없으므로 꿋꿋하게 나를 프리랜서로 소개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지만, 다시 돌아왔다. 막상 돌아와 보니 월급은 역시나 달콤하다. 빌어먹을 안도감.


자유로웠던 시간에 여행도 다니고 직장인일 때 못하던 일을 했으면 좋겠으나 그러지 못했다. 시간은 많은데 통장 잔고가 언제 바닥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과 돈이 둘 다 풍족한 순간이 내 삶에 오기는 할까. 풍족함의 기준을 좀 더 낮출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상을 버티다가 꽤 긴 휴가를 내고 돈을 펑펑 쓰는 게, 넘치는 시간을 적은 돈으로 버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미 회사에 돌아온 이상 이렇게 믿어야지. 지금 상황에 맞는 최선을 찾는 게 몸과 마음에도 좋다. 모든 건 믿음의 문제이므로 그렇게 믿기로 한다.


프리랜서 시절에는 넘치는 시간만큼 그 시간을 불안에 할애했다. 지금은 고정적으로 보이는 일이 언제 끊길지 몰라 불안했고, 덕분에 프리랜서 기간에 큰 마음먹고 떠난 동유럽 여행 때는 아프기까지 했다. 내가 이런 상황에 감히 여행을 떠나도 되나, 불안이 온몸을 쑤셨기 때문이 아닐까. 코로나가 터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라도 여행을 가서 다행이다 싶다. 어쨌거나 프리랜서로 지내는 동안 집에서나 여행지에서나 부지런히 걱정을 했다. 애석하게도 걱정을 한다고 시간이 빨리 가진 않는다. 걱정을 붙잡고 더디게 흐르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는 건 여러모로 고통스럽다.



자연스럽게, 히키코모리


자연스럽게 사람들도 안 만나게 되었다. 딱히 할 이야기도 없었고, 막상 내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멋진 구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비루한 상황이랄까.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하거나 내가 단단해지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텐데, 평생 둘 중 하나라도 이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점점 우울해지는 내 현실을 타인에게 하루 종일 징징거리고 싶지도 않았다. 내 현실이 구리다면, 그 구린 현실을 들키지 않고 혼자 꽁꽁 싸맨 채 수습도 내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집에 있으면 우울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적당히 집돌이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집에서는 별 사건도 없이 불안과 대면해야 했기에 집에 있는 게 즐겁지 않았다. 걱정을 안 하려고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봐도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궁극적인 해결이 아니라 고민을 유예하는 것에 가까웠다. 사람들과 안 만나다 보니 가끔 대중교통만 이용해도 가슴이 답답했다.



히키코모리의 재사회화


직장으로 돌아갔다는 건 재사회화를 뜻한다. 살아남으려면 사람 구실을 해야 한다. 어디 가서 능숙한 사회인인 척 구는데 꽤 익숙하고 자신 있다고 여겼지만, 1년 넘게 쉬면서 그 감을 잊은 것 같다. 가끔 내가 한 어떤 말이 너무 우습고 창피해서 숨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사회인의 태연한 표정을 짓다가 화장실에 가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소리를 죽인 채 발악해본다. 미쳤네, 미쳤어, 왜 이러는 거야. 


한 발 더 나아가는 마음으로 낯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도 했다. 요즘은 각종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있다. 영화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도 나가보고, 함께 모여서 그림을 그리는 모임에도 나가보았다. 대사처럼 머릿속으로 생각해 온 자기소개를 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친해진 사람들과는 모임이 끝난 뒤에 밥을 먹기도 한다. 인스타그램 맞팔을 하고, 모임은 끝났지만 서로의 근황을 스토리와 피드로 지켜본다.


이런 자리를 통해서 내가 느낀 건 생각보다 내가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거다. 히키코모리처럼 지내기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가진 속성이나 고민에는 별 차이가 없다. 여전히 타인을 많이 의식하고 인관관계에서의 걱정도 많다. 상처 받을까 봐 마음을 열기 힘들어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면 안 좋아할까 봐 방어적으로 구는 모습을 본다. 



재사회화에 성공한 히키코모리는 히키코모리가 아닌가


꾸며낸 모습이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별 차이 없이 별로일지도 모르는데 그냥 솔직한 게 낫지 않을까. 늘 하는 생각이지만 막상 밖에 나오면 그게 잘 안 된다. 너무 오래된 습관이다. 어디 가나 욕먹는 나의 젓가락질처럼,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다. 물론 젓가락질에 비하면 훨씬 적극적으로 고치려고 해왔지만. 음식은 내 젓가락질에 있는 그대로 수동적으로 반응하지만, 사람은 내 행동에 따라 예측불허의 반응을 보이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집에 처박혀서 젓가락질로 배달음식만 먹으며 지낸 걸까. 


재사회화가 제대로 이뤄지기도 전에 코로나가 터졌다. 당분간 또다시 집에서 지낼 거다. 만약에 재사회화가 성공한다면 나는 더 이상 히키코모리가 아니 것인가? 나의 본래 기질이 히키코모리라면 재사회화는 애초에 연기로만 가능한 것일까. 타인에게 상처 받는 게 그렇게도 두렵다면 애초에 히키코모리로 사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요즘 사람 좀 만나고 모임 몇 개 나갔다고 MBTI 검사를 하면 맨 앞 글자가 'E'가 나오던데 그렇다면 재사회화가 성공적인 걸까. 


재사회화에 성공했다는 글을 쓰는 날이 올지, 사회인으로 능숙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사회 한 구석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하루하루 사회화를 해나가고 있는 거라고 믿기로 한다. 



*커버 이미지 : 에곤 실레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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