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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ug 31. 2020

점성술부터 신점까지, 점에 미치다

그 누구의 눈도 아닌, 내 눈에 보이는 빛을 따라서

점에 미쳐본 적 있나요?


"점 볼만한 곳 추천 좀."


내게 자주 오는 연락 중 하나다. 이런 연락이 오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점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주변에 추천도 많이 해줬다. 소개해줄 때마다 수수료를 받았으면 짭짤했겠다 싶을 만큼, 자발적인 영업사원 노릇을 했다. 점쟁이 입장에서 최고의 고객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때는 점에 미쳐있었다. 맹신했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점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점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힘든 순간이 오니까. 고민이 생길 때 1순위였던 점을 삶의 선택지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기분이다. 



진로를 점성술사에게 맡긴 휴학생


대학교 2학년을 끝내고 휴학을 했다. 휴학을 한 이유는 보통 2학년이 끝나면 다들 휴학을 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는 걸 따라해야 한다고 믿는 나는 당시에 딱히 뭘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딱히 할 게 없어서 하루에 영화를 3편 정도 보고 잠 드는 날이 많았다. 이럴거면 군대를 빨리 가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만큼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취업준비'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무엇인가 선택은 해야겠는데 이왕이면 가장 영리한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나라에는 유명한 점성술사가 두 명 있단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내가 얼마 전에 만났지."


그때는 그 말이 망망대해에서 보는 등대의 빛 같았다. 인생의 선택을 앞두고는 망설였지만, 점성술사에게 연락하는 건 망설임없이 단숨에 해치웠다. 그게 내 생애 첫 점이었다. 막상 나간 자리에는 영화 속 점성술사의 모습이 아닌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이는 '형' 정도 되어보이는 사람이 나왔다. 심지어 대학원생이라고 한다. 점성술은 일종의 통계라면서, 점성술사의 노트북 화면으로 복잡해보이는 점성술 프로그램이 보인다. 나의 생일과 태어난 시간을 입력하고 조금 살펴보더니 하나씩 답을 해줬다.


"카피라이터를 준비해보는 거 어때요?"


문예창작을 전공하면서 시와 소설만 끄적이던 내게 카피라이터는 생소한 직업이었다. 확실한 건 멋진 이름의 직업이라는 거다. 얼굴 닦는 기름종이보다도 얇은 나의 귀는 순식간에 팔랑거렸고, 별 고민 없이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뭘 할지 몰라서 동네 도서관에서 광고 관련 책들을 읽고, 광고 관련 무료 강의를 쫓아다녔다. 당장 할 수 있는 광고 공모전을 찾아보니 슬로건을 쓰는 공모전이 있어서 공모전에도 참여했다. 참여로만 따지면 몇 백개의 공모전에 참여하고, 공모전 몇 개에서는 슬로건이 뽑히기도 했다. 이런 경력을 가지고 관련한 대외활동도 몇 개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광고 일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커리어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광고 관련 대외활동을 한 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점을 맹신하면 생기는 습관 중 하나는 결과에 모든 걸 끼워맞춘다는 거다. 만약에 그때 점성술사의 말을 듣지 않고 아예 다른 길을 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작두 타는 거 본 적 있으세요?


그 이후로도 다른 점성술사부터 타로카드, 역학, 관상 등을 거쳐서 신점에 이르게 된다. 이쪽 분야에서 끝판왕 같은 느낌이라 가도 되나 싶었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므로 어느새 눈 떠보니 점쟁이 앞에 앉아있었다. 처음이 힘들지 가다보니 마치 집처럼 드나들고, 메신저로 연결된 사회이기에 고민이 생기면 수시로 연락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작두 타는 것도 봤다. 


돌아보면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어 보이는 답변을 하는 게 좋아서 점을 맹신했던 것 같다. 종교도 없는 내가 어느새 점쟁이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 걸 보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꼈다. 돌아보면 나의 과거는 잘 맞추지만, 미래를 맞춘 적은 거의 없다. 나는 귀는 얇지만 결국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서, 내 결정을 지지받으려고 간 점집에서 꾹 참으라고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만둔 적도 있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확인받고 싶어서 점을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날고 기는 놈들도 다 똑같이 걱정한다


이제 더 이상 점을 보지 않는다. 차라리 점을 보고 싶으면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가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본적으로 모든 결정을 내가 하고, 미래의 어떤 지점이 궁금하면 현재의 나를 봐야하니까. 물론 정신과 의사에게 점쟁이에게 기대하듯 무엇인가를 기대하면 안 된다.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면서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대부분의 답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세상에 날고 기는 잘난 놈들도 다 똑같이 걱정하고 여기 찾아온다."


점쟁이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걱정을 토로하는 걸 목격했기에 위와 같이 말했다. 내가 닿고 싶은 지점에 위치한 사람조차도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거다. 답답한 마음에 점도 볼 거고. 넓게 보면 다들 망망대해에 있는 건 비슷할 거다. 누구는 망원경이나 구명조끼 같은 특수아이템이 있을지 몰라도, 결국 각자의 방법으로 헤쳐나갈 영역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그 누구의 눈도 아닌, 내 눈에 보이는 빛을 따라서


가끔 유튜브에서 타로카드 영상도 보고, 관상 잘 보는 선배를 만나면 괜히 내 상태를 물어보고, 최근에 명리학을 배우는 친구를 만나서 내 생년월일도 말해줬다. 점에 미쳐있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걱정도 많고 무엇인가 선택할 때 확신도 없다. 다만 어차피 내가 감당할 몫이라면 내가 선택하는 게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망망대해에서 점성술사 말 따라, 점쟁이 말 따라 이리 저리 헤엄치다가 지금 '여기'에 왔다. 좌표조차도 찍을 수 없는 어느 한 지점에서 일단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쳐본다. 오늘 죽지 않고 떠있다면 하루를 잘 꾸렸다고 여기면서 아주 서서히 움직여본다. 그 누구의 눈도 아닌, 내 눈에 보이는 빛을 따라서.



*커버 이미지 : 영화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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