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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부동산도 잘 모르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어른이 된다고 자동 획득되는 게 아닌 일들

by 김승

한자와 부동산을 모르는 어른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익혀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고 느꼈다. 한자도 그 예 중에 하나다. 능숙하게 한자를 읽고 쓰는 어른들을 보면서, 나도 어른이 되면 한자를 많이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한문 과목을 싫어하던 과거나 지금이나 나의 한자 실력은 바닥을 친다. 한자를 공부할 시간에 다른 걸 익혔다고 하면 핑계가 되려나.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독립'이다. 평생 가족과 함께 살았으나, 지금보다 지출이 늘어나더라도 내 삶을 좀 더 자유롭게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독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로서의 삶을 좀 더 완전하게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독립 후에 쓰는 비용은 투자라고 생각하고 싶다. 오랜 기간 독립해서 살아온 이들은 이 말을 들으면 자취생활의 고단함을 모른다며 코웃음을 칠지 모르지만, 독립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가족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수록 갈등이 점점 늘어나는 게 싫다.


어쨌거나 독립과 관련해서 알아보면서 나의 부족함을 느낀다. 부동산 관련해서 아는 게 거의 없다. 금융 관련해서도, 첫 회사였던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주워들은 것 정도가 아는 지식의 전부다. 주변에 이러한 나의 부족함에 대해 말하면, 발등에 불 떨어지면 강제로라도 배우게 된다는 답이 돌아온다. 부모님도 딱히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 가족들이 사는 집을 마련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부모님과 갈등이 많은 어른이 되었으므로 질문은 하지 않기로 한다.



어른이 된다고 자동 획득되는 게 아닌 일들


30대가 된 이후로 주변에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지인들이 늘어간다. 같은 교복을 입고 한문 수업을 들으며 고통받던 친구는 능숙하게 집을 구했다. 나와 이 친구가 아는 한자의 숫자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부동산 관련해서 아는 게 많은 친구를 보며 어른스러움을 느낀다. 결혼, 출산, 집 등 사회에서 굵직하게 여기는 키워드를 몸에 지닌 친구를 보면 낯설 때가 있다. 야자 끝나고 아이스크림 사 먹던 때나 지금이나 하는 이야기는 비슷한데, 관심을 가지고 해낸 건 다르기 때문일까.


교복을 입던 때나 지금이나 나의 관심사는 비슷하다. 책, 영화, 음악처럼 관심 있는 게 아니면 잘 알지도 못한다. 주식이 난리라지만 하루 종일 그것만 들여다볼 나를 알기에 딱히 시작하고 싶지 않다. 결혼은 내 삶에서 일어나기에는 돈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요구치가 너무 높은 이벤트로 느껴진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줄 알았던 것들은 생각보다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획득 가능한 것들이었다.



'어른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로 불리는 것들


마법천자문으로 한자를 마스터하고, 공인중개사 자격을 획득한 고등학생은 사회적 기준에서 보면 나보다 더 어른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나는 외적으로 늙어버린 것 말고는, 어릴 적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과는 참 다르다. 뻔뻔하게 내 치부를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다.


이 글에 쓰인 한자어 중 몇 개나 한자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고, 내년에 독립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어른의 기준은 제각각이지만, 좀 더 '생산적으로 보이는 지식'을 익혀야겠다는 압박은 늘 느낀다. 어른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 로 학습된 것들. 과연 그런 어른이 되는 데 성공할까. 코 앞의 현실도 알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



*커버 이미지 : 이중섭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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