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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Oct 20. 2020

감정은 상황을 통해 말해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타인의 글을 읽고 나면 최대한 좋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비판할 지점이 생겨도 상처 받지 않게 말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은 어차피 자신이 제일 잘 알 거고, 내 눈이 틀릴 수도 있는 거니까. 상처 받기 위해서 글을 쓰는 사람은 없을 거다. 글을 쓰는 가장 큰 원동력은 칭찬과 인정이라고 믿는다.


좋은 마음을 품어도 피드백을 주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가 없이 '감정'만 나열된 경우다. 추상화를 보는 기분이 든다. 나는 추상화 같은 타인의 감정을 해석할 만큼 사려 깊지도 않고, 분석할 능력도 없다.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살펴볼 텐데, 감정은 너무 개인적이다.


상황을 통해 감정을 보여주는 게 좋다. 내가 어떤 감정을 품고 느꼈는지 상황을 통해 보여주면 이해하기도 수월하다. 독자 입장에서 글쓴이의 내면을 헤아리는 건 어려운 일인데, 상황을 통해 보여주면 감정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다. 감정이 물이라면, 상황은 물을 담은 통이다. 일단 통에 담겨야 살펴볼 수 있다. 들어가서 헤엄치기에는, 감정은 그야말로 망망대해다. 


가끔은 감정을 토로하는 글을 쓰고 싶다. 상황을 밝히기도 애매한데, 감정을 쏟아내고 싶은 순간이 있으니까. 그런 날에는 감정을 나열해본다. 타인에게 닿기 힘든 글이 된다. 심지어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내가 쓴 글임에도 무슨 상황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감정이 발현되는 계기가 되어준 상황에 대해 쓰면, 시간이 지난 뒤에도 상황이 떠오르면서 감정도 떠올리기 쉽다.


이러한 방법론을 삶에도 적용한다. 어떤 감정에 휩쓸릴 때면 어떤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생각해본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글을 쓰면 도움이 되는 이유도, 내 감정의 출처를 알 수 있기 때문일 거다. 감정의 출처가 된 상황을 마주하고, 그 상황을 객관화해보면 격했던 감정이 제법 수그러든다. 하루 종일 무력감에 젖어 있을 뻔했는데, 막상 상황을 살펴보니 내 감정이 잠시 과했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 너무 슬퍼."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왜'라고 묻는 이유는 나의 MBTI 결과가 INTJ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일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는 그 감정을 나도 이해하고 싶어서 이유를, 상황을 묻게 된다. 타인의 감정을 함부로 추측하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상대방 입장에서도 공허할 테니까. 슬픔의 이유를 듣게 된다면, 막연하게 느껴졌던 상대의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상황을 통해 감정을 보겠다. 글에서나, 대화를 할 때나. 이런 방식은 너무 차가운가. 감정은 상황을 통해 이리저리로 운반된다. 그렇게 믿고 묻는다, 당신의 감정을 알기 위해 상황을 묻겠다고. 나도 당신의 감정을 알고 싶으니까. 



*커버 이미지 : 프레드릭 샌디스 '사랑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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