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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Oct 22. 2020

네가 28년 뒤에 시험에 붙는다면

동생을 계속 응원할 수 있을까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동생에게 잔소리를 했다. 최근 들어서 독하게 마음먹고 동생에게 모진 소리를 했다. 동생도 답답해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한 요즘이니까. 그래도 싫은 소리는 싫은 소리다. 아마 들으면서 싫었을 거다. 나도 굳이 이런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진짜 동생을 위한 건가 싶다.


동생은 최근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준비한지는 이미 꽤 되었다. 그러나 매년 아팠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몸과 마음의 건강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거라, 아마 자신이 제일 답답했을 거다. 나도 늘 응원해주는 편이지만,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힘들어도 빨리 힘내서 시험을 끝내기를 바라며 독하게 한 말은 내 입에 품기에도, 동생 귀에 들어가기에도 유쾌하지 않은 것들이다.


불편한 대화를 마치고, 아니 일방적인 일갈에 가까운 말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다. '유퀴즈 온 더 블럭'을 다시 보기로 봤다. 웃을 거리가 필요했으니까. 불편한 마음을 희석하고 싶어서. 과한 생각이겠지만, 자기 때문에 죽은 이를 목격하고 그 순간을 잊으려고 극장을 찾은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이 떠올랐다.


이번 '유퀴즈 온 더 블럭'에는 여러 직업을 가진 이들이 나왔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이는 28년간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55살에 변호사가 된 사람이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기에, 생계유지를 위해 아파트 경비원 등 여러 일을 하면서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꾸 그의 가족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가 시험을 붙고 20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는 어머니, 잘 나가는 치킨집 장사를 접고 변호사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도 옆에 있어준 아내, 아버지가 고시 공부하는 곳을 찾아가서 함께 자장면을 먹을 때 가장 좋았다는 아들, 아버지가 변호사 시험에 붙자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구두를 사줬다는 딸. 


동생에게 잔소리를 하며 그런 소리를 했다.


"10년 뒤에도 이렇게 있으면 서로 힘들지 않겠냐."


동생을 위하는 척하는 말이었지만, 사실 나를 위해서 한 말일지도 모른다. 내 기준에서 이상적인 동생이 되기를 바라면서. 


만약에 동생이 28년 동안 시험을 준비한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과연 묵묵하게 응원해줄 수 있을까. 반대로 내가 28년 동안 어떤 시험을 준비한다면, 동생은 나를 응원해줄까. 내가 동생을 응원해줄 거라는 확신은 없는데, 마음 약한 동생은 나를 응원해줄 것만 같아서 그게 마음에 걸린다. 동생이 약하다는 게 늘 마음에 걸린다.


나도 내가 1인분의 삶을 해내고 있는지, 밥값을 하고 사는지, 괜찮은 아들인지, 좋은 형인지 알 수 없다. 이제야 겨우 다시 직장 생활하면서, 알량한 몇 가지 우위를 가지고 동생 앞에서 유세를 떠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욕심을 동생의 마음인 것처럼 말하곤 한다.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동생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는 게 맞을 거다. 상대가 먼저 도움을 구하기 전에 나서는 건 꼰대가 되는 지름길이다. 동생 눈에 나는 사회에서 많이 봐온, 또 하나의 꼰대일지도 모른다. 우리 형제가 그렇게 미워하던 권위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내가 이어받은 것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당장 내년도 모르겠지만, 28년 뒤라는 숫자를 타인을 통해 보니 아득하다. 28년 뒤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동생은 내 제일 친한 친구이지만, 그때쯤 동생과는 소원해졌을까. 멀리 떨어진 채 대화도 없이, 막연하게 애틋하다고 믿고 살게 될까.


"나도 다 아니까 그냥 응원 좀 해줘."


잔소리 끝에 동생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걱정 없이 알아서 잘 살면 좋을 텐데, 그게 참 어렵다. 설마 28년이나 걸리겠어 싶다가도 막상 진짜 그렇게 되면 어떨지 상상하는 밤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은 28년 걸려서 합격했으니 등장한 거지만, 28년 넘게 쫓아도 결국 합격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도 있을 거다. 동생을 떠올리다가, 최악을 상상하다가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무책임하게 공허한 응원을 보내는 것도 싫은데. 


28년 뒤에 네가 무엇을 해도 응원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동생과 관련된 질문들은 모두 의문문으로 끝난다.



*커버 이미지 : 르네 마그리트 '보이지 않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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