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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본 영화

사랑 영화를 많이 본 이유

by 김승

'제일 좋아하는 영화'와 '제일 많이 본 영화'가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영화는 한번 보고 그치는 경우가 더 많다. 무엇인가를 열렬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쉽게 찾아오지 않기에, 그 감흥이 깨질까 봐 오히려 아껴서 보게 되는 것 같다. 아끼다가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좋았다는 감정만 어렴풋이 남고 실체가 희미해지는 걸 조금씩 느낀다.


많이 본 영화는 보통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가 안 되는 영화'다. 주로 사랑 영화들이다. 왜냐하면 내게 사랑은 늘 어렵고 이해가 안 되니까. 내 평생 사랑은 늘 이해보다 암기에 가까워서 그런지, 사랑 영화도 이해 못하고 암기하듯이 자주 본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허진호 감독의 초기작들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는 각각 6~7번 정도는 본 것 같다. 둘 다 고등학생 때 문학반 선생님의 권유로 보게 되었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사랑에 있어서 잼병에 가까운 내 감성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었다. 한석규와 심은하는 언제 사랑에 빠진 거지? 사랑을 별로 표현 안 한 것 같은데 왜 깊어진 거지? 유지태와 이영애는 언제 어긋난 거지? 둘 중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거지? 이런 류의 고민들을 하면서도 답을 얻지 못해서 영화를 반복해서 보았다.


내 기억 속에 두 작품은 '많이 보았지만 결국 이해에 실패한 영화'로 남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몇 번의 연애를 지난 뒤 다시 보았을 때, 비로소 영화가 다르게 보였다. 그 이후로는 '내 경험만큼 다르게 보이는 영화'가 되었다. 특히 '봄날은 간다'는 지금까지 10번도 넘게 보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감흥이 더 깊어진다. 결국 사랑 영화를 보기 위해서 필요했던 건 '이해'가 아니라 '경험'이었다고 느낄 만큼.


나의 베스트 영화 목록에는 사랑 영화들이 많다. 아마 시간이 지나서 보면 영화에 대한 감정이 달라질 거다. 어떤 사랑 영화는 지금 와서 보면 과거에 왜 좋아했었나 싶을 만큼 유치하고, 어떤 사랑 영화는 과거에 별 감흥 없이 보았으나 지금은 울면서 보게 되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 능숙해질 줄 알았던 사랑이지만, 여전히 어렵다. 영화라고 답을 주지 않는다. 영화와 함께 고민할 뿐.


궁극적으로 가장 쓰고 싶은 글은 사랑인데, 내겐 너무 어려운 사랑이라 그런지 가장 쓰기 힘들다. 사랑에 대한 글과 영화를 잔뜩 본다고 늘 수 있는 감정도 아니다. 물리학 공식을 접목한 영화보다 사랑에 대한 영화가 늘 내겐 가장 어렵고 난해하다. 사랑 영화를 단숨에 이해했다고 기쁘지도 않을 것 같다. 사랑만큼 쉬워졌을 때 허탈한 것도 없을 테니까.


사랑 영화는 그렇다 쳐도, 내 다음 사랑은 성공하기를 바란다. 사랑에서 성공은 무엇일까. 오래오래 이어지는 걸 말하는 걸까. 잘 모르겠으므로 다음에 볼 영화도 사랑에 대한 영화다. 사랑에 능숙할 수 없는 사람이므로, 앞으로도 내가 가장 많이 볼 영화도 사랑 영화일 듯하다.



*커버 이미지 : 영화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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