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때마다 아이들과 엘리베이터를 탄다
퇴근은 그 자체로 기분이 좋지만, 몇 가지 조건이 더해지면 최상의 만족감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가 퇴근과 동시에 도착하면 어마어마한 행운을 거머쥔 기분이다. 계단을 내려가는 게 무릎에 안 좋다는 걸 안 이후로는 꽤 높은 층수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계단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올라가는 건 운동이라도 된다지만, 몇 분 일찍 퇴근하자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무릎이 상하고 싶지는 않다. 무릎이 얼마나 상할까 싶지만, 노파심은 언제나 내 곁을 머문다.
오늘은 다행스럽게도 엘리베이터가 일찍 도착했다. 타고 있는 사람도 없다. 1층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히는 걸 바라본다. 문이 닫힌 뒤에는 가방을 앞으로 메고, 엘리베이터에 탈 이들을 기다린다.
"자, 밀지 말고 천천히 들어가자."
선생님의 말을 따라 아이들이 탄다. 유치원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우르르 엘리베이터에 탄다. 퇴근시간 때마다 마주치다 보니, 이젠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자연스럽게 아이들부터 떠오른다. 아이들은 솔직하므로 '좁아요'부터 시작해서 불만을 토로한다. 꽤 많은 아이들이 타지만, 아직 체구가 작기에 거의 모든 아이들이 타는 데 성공한다.
나의 퇴근시간은 아이들과 비슷하다. 내 퇴근시간은 직장인 치고 엄청 빠른 편이 아닌데, 아이들은 이 시간까지 무엇을 한 걸까. 한 건물 안에 있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하긴, 회사 옆팀에 누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아예 다른 층에 있는 아이들에 대해 어떻게 알겠는가.
"선생님, 저 오늘 버스 맨 뒷자리 앉을 거예요!"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운 아이들이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막 퇴근한 직장인들만 탄 엘리베이터에 아이들이 타는 순간 공기부터 달라진다. 직장에 대한 불만부터 떨어진 주식 이야기까지 부정적 에너지를 풍기던 어른들도 아이가 타는 순간 입을 다물고 아이들의 말을 경청하게 된다. 작은 아이들이 혹여라도 다칠까 봐, 몸을 최대한 벽 쪽에 붙여본다. 내 다리를 벽 삼아서 기댄 아이도 있다. 회사에서 각종 숫자를 보다가 아이들을 바라보면, 유난히 아이들이 더 작고 약해 보인다. 내가 보는 숫자는 그 단위에 상관없이 너무 단단해 보이기 때문일까.
아이들의 가방, 머리띠, 옷 등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부모님이 챙겨주면서 얼마나 신경 썼을지를 가늠해보게 된다. 얼마나 심혈을 골라서 골랐을까. 내 옷은 아무거나 입어도 아이들은 좋은 거 입혀야지,라고 말하던 어른들이 떠오른다. 나는 내 옷도 제대로 못 고르는데, 나중에 혹여라도 부모가 될 때 잘 챙겨줄 수 있을까. 아이가 내 취향을 안 좋아하면 어쩌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괜한 걱정을 해본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아이들은 버스를 타러 간다. 건물의 모든 이들이 아이들이 다칠까 봐 조심스럽게 쳐다본다. 아이들이 공기를 바꾼다는 걸 실감한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한 명식 버스에 탄다. 나도 다음 퇴근 때 다시 아이들을 마주칠 거다. 눈높이가 안 맞아서 얼굴을 외운 아이는 없지만, 눈높이가 맞아도 마스크 때문에 외우게 되는 건 얼굴이 아니라 마스크 스트랩 정도가 아닐까. 나한테도 답답한 마스크가, 아이들에게는 더 답답할 것 같아서 코로나가 더 미워진다.
*커버 이미지 : 존 조지 브라운 '기차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