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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 day 1 scene

오늘 서울엔 단풍이 많다

입동에 목격한 단풍

by 김승

주말이지만 일찍 일어났다. 안과에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과와 바나나를 입에 욱여넣고, 영양제들까지 먹고 나서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출퇴근길은 무조건 지하철이기 때문에, 오늘은 버스를 타기로 한다.


창문 밖으로 단풍들이 보인다. 단풍이 이렇게 무르익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흥인지문 공원부터 장충단 공원까지, 곳곳에 등산복을 입고 단풍 구경 나온 어르신들이 보인다. 버스정류장까지 오는 길에 발에 밟히는 감촉이 무엇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바닥에 떨어진 단풍들 같다. 그동안 나를 스쳐갔을 가을이 발에 묻어난다.


달력을 보고 알았다. 오늘은 입동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날. 일기예보에서는 내일부터 추워질 거라고 알린다. 곧 영하의 날씨가 올 거라는 지인의 카톡이 왔다. 나는 어제까지도 가디건 차림으로도 땀을 흘렸는데, 이제 땀 흘릴 일은 없을까. 단풍을 보러 걸어가다 보면 땀이 날까. 겨울이 되면 단풍이 없을 거고, 걷다 보면 땀이 날 정도의 온도 정도에만 단풍도 존재할 거다.


입동에서야 단풍을 대로 쳐다본다. 따로 단풍을 보러 간 적은 없다. 벚꽃이나 단풍을 보러 가는 이들이 많지만, 따로 즐겨본 적이 없다. 오히려 뒤늦게 발견하고 놀랄 뿐. 아, 이렇게 예쁘게 펴있었구나. 작정하고 보러 가면 사람이 더 많을 것 같고, 우연이 만나는 게 더 반갑기도 하고.


점점 가을은 짧아질 거다. 단풍 구경도 갈수록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밖으로 단풍을 볼 여유도 사라질지 모르고, 가을이 짧아질 거라는 뉴스는 늘 나오고 있으니까. 산책을 안 한지가 오래되었는데, 단풍이 다 사라지기 전에 산책이라도 한번 할 수 있을까. '해야지' 대신 '할 수 있을까'라고 적는 건, 매년 이런 생각을 하다가 미뤘기 때문이다. 이젠 겨울이고, 아마 내년에 단풍을 보면 또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 가을을 느끼지 못한 채, 뒤늦게 발견하고 아쉬워하는 것의 반복. 겨울의 시작에 단풍을 발견하는 일은 내년에도 반복될까.



*커버 이미지 : 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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