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이유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불안하다. 불안하지 않은 인간은 없을 거다. 그러나 불안과 친해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불안을 즐긴다? 즐길 수 있으면 그걸 불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늘도 불안에 시달린다.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요구르트를 먹고 나서 배가 아플까 봐 불안해한다. 그림을 그리러 갔는데 내가 그린 그림이 이상하게 보일까 봐 불안해한다. 사람들에게 말을 하다가 말실수를 했을까 봐 불안해한다. 불안을 키워줄 먹이는 넘쳐난다. 나는 불안을 살찌운다.
왜 늘 불안할까 생각해보았다. 매 순간 선택을 하고, 그 선택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거라는 상상 때문일 것 같다. '최선'이라는 허상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지금 최선의 선택을 하였는가. 그런데 최선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근거도 없이 그저 추측으로 '최선'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을 놓쳤을까 봐 불안해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오늘도 열심히 불안해한다. 이 선택보다 나은 선택도 있지 않았을까? 정말 이게 최선일까? 나는 최선을 놓친 게 아닐까? 이런 식의 가정이 나를 지치게 한다. 불안을 불러오는 주문과 같다.
포기하면 좀 더 편해질까. 희망 따위 없다면 불안도 덩달아 사라질까.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최선을 쫓을 거고, 희망을 품을 거다. 불안에 시달린 채 이렇게 추상적인 글을 써도 될까. 불안을 마냥 들여다보기 지쳐서, 마침표를 찍고 문장을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