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스타일의 변화가 크지 않은 편이다. 군대 가기 몇 달 전에 별로 티 나지 않는 색으로 염색을 해본 게 염색의 끝이고, 심한 곱슬이기 때문에 내 삶에 파마는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나마 해본 거라면 곱슬에 대한 스트레스로 스무 살 때 해 본 매직인데, 머리에 달라붙어서 곱슬에서는 탈출했으나 영 보기 안 좋았던 기억이 난다. 놀림거리로 아주 적절한 스타일이었다.
머리와 관련해서는 딱히 원하는 것도 없이, 지저분하면 머리를 다듬는 정도의 삶을 살아왔다. 동네에 커트 육천 원짜리 미용실에 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머리가 촌스러워 보인다는 생각으로 카카오에서 헤어숍을 뒤져보았다. 여러 곳을 갔지만 답은 비슷했다. 투블럭 어쩌고 리젠트 어쩌고 하는 머리를 추천받고, 그때마다 '깔끔하게 해 주세요'라고 답할 뿐이다. 이런 시간들을 지나서 결국에는 주변에서 '머리 예쁘다'라고 해주는 빈도가 높은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미용실이다. 매달 꼬박꼬박 자르기보다 한 달 반에서 두 달까지 별생각 없이 기르다가 갈 때가 많았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을 손님이다. 그래도 여러 번 가다 보니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었다. 영화 글 쓴다는 이야기를 한 뒤로는 개봉한 영화 중에 무엇이 재밌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으나, 내가 보는 건 주로 극장 상영작이 아니라 왓챠나 넷플릭스에서 보는 것들이었다. 본 영화가 없으니 '그 영화 좋다던데요'라는 하나마나한 답변의 연속이었다. 이런 대답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자를 때마다 눈썹 정리까지 해주는 걸 보며 계속 가게 되었다.
프리랜서여서 고민이 많았던 작년에는 미용실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택지는 두 가지 정도 있다. 솔직하게 우울한 내 생활을 말하거나, 나의 비루한 일상을 포장해서 말하거나. 내 선택은 주로 후자였다. 머리를 자르고 나면 내가 한 말들 때문에 죄책감이 들었다. 나를 포장하기 위해 머리를 다듬는 동안 내 머리도 포장한다.
뒷머리가 지저분해서 다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젠 내 일상은 포장하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졌다. 그런데 내가 몇 년간 가서 내 머리를 맡긴 그 디자이너가 사라졌다. 미용실을 옮긴 건가 싶어서 다른 체인점을 찾아보았지만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에 받아둔 명함을 잘 보관해둘걸 그랬다. 미용실에 전화를 해서 물어볼까 하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포기한다.
다른 미용실의 다른 디자이너,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익숙한 지금의 머리와는 분명 다른 머리가 될 거다. 눈썹을 다듬어주는 일은 없을 거다. 내 일상에 대해 다시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다. '이전처럼 잘라주세요'라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예쁘게 잘라주세요'라는 악덕 클라이언트들이 대행사에 요구할 때 쓰는 극악무도하고 무책임한 말을 하게 될 거다.
몇 년간 내 일상에서 몇 달에 한번 만나는 사람은 드물었다. 헤어 디자이너는 내 일상을 가장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서 들은 사람이다. 독립 출간을 했을 때도 당연하다는 듯이 책을 선물했다. 나와 이야기를 꾸준히 나눈 사람이므로, 내 이야기를 들려줘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생활 영역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익숙한 루틴 같은 걸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앞으로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거고, 혹은 그 어떤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새로운 곳을 찾아다닐지도 모른다.
자라는 머리카락처럼, 누군가가 사라지는 일도 흔한 일인데 영 적응이 안 된다. 앞으로 내 머리는 어떻게 될까. 어딘가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내 머리도 어디를 가도 나쁘지 않은 정도로 잘려나갔으면 좋겠고.
*커버 이미지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릴리트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