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 day 1 scene

옷도 연습이 필요하다

내 의지로 옷 고르기

by 김승

퇴근길에 이충걸 편집장이 쓴 글을 읽었다. 옷과 나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 나이를 매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서 컨버스와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으면 어려 보이고 싶냐고 묻는 것.


일상에서 이런 식의 편견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조차도 회사에서 옷 지적을 받을 때가 많으니까. 부념 규정상 복장이 자유인데 왜 지적을 받아야 하는 걸까. 나약한 회사 막내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고,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거다. 덕분에 나는 이번 여름에 회사에서 반바지를 입지 않았고, 급하게 여름용 긴 바지를 구매했다.


대학교에서 시 수업을 들을 당시에, 시를 알려주시던 시인 선생님은 정말 옷을 잘 입으셨다. 가장 좋았던 건 의복에 규정된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다. 그 당시 어떤 연예인이 쓴 머리띠가 유행이었는데, 하루는 그 머리띠를 쓰고 오셨고 보자마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막 스무 살이 된 내 동기들은 스스로 여러 제약을 만들고 도전도 못하는 아이템을 선생님은 과감하게 도전했다. 어쩌면 그것을 '도전'이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이미 편협함의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옷 쇼핑을 안 한지 몇 년이 되었다. 동생과 덩치가 비슷해서 옷을 같이 있는데, 동생은 나보다 옷을 훨씬 잘 안다. 그에 비해 나는 옷을 사거나 고르는 걸 귀찮아한다. 삶에서 선택 때문에 고민할 때가 많은데 옷까지 고민해야 한다니.


이런 게으름 덕분에 옷에 대한 안목이 길러질 생각을 안 한다. 가끔 옷을 사고 싶으면 주변 이성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어차피 내게 의복은 내 취향의 발현보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의도가 더 크다. 그렇기에 타인의 시선을 믿고 고른다.


다만 옷에 별 관심 없는 내게도 마음에 가는 옷과 스타일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나는 몸에 열이 많아서 엄청나게 춥지만 않으면 발목양말이 편하다. 마찬가지로 열 때문에 남들이 패딩을 입어도 가디건을 입는다. 활동성이 줄어드는 게 싫어서 롱패딩은 안 입는다. 후드티가 내게 안 어울린다는 생각 때문에 집에 후드티가 없다. 입고 싶지만 '이 나이에 이걸 입어도 될까' 싶어서 포기한 것들도 꽤 있다. 예를 들면 떡볶이 코트를 입고 싶을 때가 많은데, 입고 나면 직장에서부터 지인들까지 얼마나 많은 욕을 할지 훤히 보인다.


옷도 취향이기에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의 취향은 생각보다 범위가 그리 넓지 않다. 왜냐하면 옷 스타일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맞아야 한다는 편견에서 나도 완전하게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연습해야 할 건 나의 힘으로 옷을 고르고 사보는 거다. 그리고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건, 옷을 선택함에 있어서 제약을 두지 않는 거다. 치마를 입든, 아방가르드한 무늬의 티셔츠를 입든 내 마음대로 하는 것.


내일도 출근 때는 가장 무난해 보이는 옷을 입겠지만, 몇 년간 펼쳐보지 못한 옷에 대한 내 자유의지를 꺼내보아야겠다. 내가 이상하게 옷을 입고 오면 연습 중이라고 이해해주기.



*커버 이미지 : 조반니 볼디니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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