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결국 부피와의 싸움이므로
단숨에 찾아오는 위기도 있지만, 수많은 예고 끝에 찾아오는 위기가 있다. 몇 달 전에 무너진 나의 책장은 후자에 해당한다. 책장 중간에 위치한 층이 점점 한쪽으로 기울었지만, 설마 무너지겠느냐는 생각으로 책을 계속해서 쌓아두었다. 내 좁은 방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게 책이다. 틈만 나면 책을 사고, 책장의 빈 곳을 찾아서 책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무너진다.
내년 목표 중 하나가 독립이다. 독립을 마음먹은 뒤로 나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읽지도 않는 책을 잔뜩 사는 책 욕심은 나의 기본값이 되었다. 만약에 독립하고도 지금처럼 책 욕심을 부린다면, 아마도 책장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내 한 몸 누우면 끝날 작은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꾸역꾸역 책 욕심을 부려왔는데, 독립을 생각하니,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지금 있는 책들 중 일부를 팔아버릴까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유일하게 수집에 대한 욕구가 넘치는 게 책인지라, 팔거나 버리고 싶지 않았다. 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수집한 것들이니까. 내 취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전자책이 있다. 여기서의 애로사항이라면, 내게 책이란 종이의 질감을 느끼는 거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서 종이를 한 장씩 넘기고, 눈으로 종이에 인쇄된 활자들을 바라보는 순간이 좋다. 고리타분할 수 있지만, 난 종이가 좋다. 종이가 아닌 책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도 책 욕심이 심한데, 만약에 배송도 필요 없는 전자책에 익숙해지면 책에 쓰는 비용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지 않을까. 사둔 책부터 보고 나서 사야 할 텐데 말이다.
독립 후에 근처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집에서 주기적으로 안 읽은 책들을 조금씩 가져와서 읽는 것도 방법일 거다. 전자책보다 귀찮겠지만, 이게 지금의 내 성향에 가장 맞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책에 대한 욕심이 구매에서 대여로 바뀌는 건 지출 면에서 큰 이득일 거다. 다만 소유욕이 강한 내 성격을 고려하면 얼마나 오래 지속 가능할지 모르겠다. 좋은 책이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을 느끼는 이상한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일단 독립을 해봐야 알 것 같다. 그전까지는 책 구매보다는 그동안 못 읽은 책을 읽는데 힘쓸 예정이다. 막상 독립하고 그 생활에 적응하고 나면 답이 나올 거다. 시행착오도 겪게 될 거다. 바닥이 책으로 가득 찰 수도 있고, 동네 도서관에서 많은 이들과 신간 도서를 두고 대출 경쟁을 할 수도 있다. 전자책에 재미가 들려서 배달음식 시키듯이 책을 많이 시켜서 자금 사정에 무리가 생길 수도 있고, 책을 빌리러 가기 귀찮아서 독서를 거의 안 할지도 모른다.
과연 책과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에 내가 가지게 될 책의 총 부피는 얼마나 될까. 책의 내용이 가진 가치 대신 부피를 고민하는 될 줄이야. 책을 고르는 것이 얼마나 쉽고 속 편한 일인지 다시금 실감한다.
*커버 이미지 : 반 고흐 '파리인들의 소설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