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자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하루가 짧아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예를 들어서 저녁에 영화나 강의라도 보게 된다면, 그 시간에 집중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조금 더 자고 나가기도 한다. 하루 종일 팔팔하게 집중할 수 있는 정신력이 내게는 없으니까.
오늘은 일요일이기에 전날 늦게 잤다. 늦게까지 영화를 봤고, 일어나서도 영화를 봤다. 요즘은 딱히 할 일이 없으면 영화부터 본다. 그리 졸린 영화도 아닌데, 잠을 설쳐서 그런지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버티 듯 보았고, 결국 영화가 끝난 뒤 모니터도 끄지 않고 잠이 들었다.
꿈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 안 난다. 다만 동생이 등장했다. 동생이 어떤 일에 휩쓸려서 나까지 휩쓸리게 되는 내용이었다. 꿈에서 깨자마자 동생에게 물었다. 내가 이런 꿈을 꾸었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무슨 일이라고 있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대화를 좀 나누고 나서 '진짜' 깨어났다. 즉, 꿈속에서 꿈을 꾼 거였다.
보통은 낮잠에서 깨고 나면 기분이 별로 안 좋다. 시계를 보고 1~2시간 흘러있는 걸 확인하고 조급해지기까지 한다. 오늘 하루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으니까. 이러한 강박을 가진 내게도, 방금 겪은 일은 흥미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현실의 나는 동생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꿈속의 나였기에 동생에게 이것저것 이야기한 것이다. 몇 달 전에 동생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한 이후로는 내 마음이 찔려서 그런지, 동생과 예전만큼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있다.
개운한 건 부정할 수 없다. 꿈속에서조차 잠이 들었으니 당연한 일일까. 그러나 꿈속에서조차 깊게 잠들지 못하고 꿈을 꾼 건데. 꿈에 대한 내용을 적고 싶어서 메모장을 바로 켰으나, 기억이 희미하다. 잠들기 전에 본 영화 '다즐링 주식회사'의 배경이 인도와 그곳을 달리는 기차여서 그런지, 기차 밖으로 보였던 사막이 배경으로 등장한 것 같긴 하다.
꿈속에서 꿈을 다시 꾸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왜 나는 꿈속에서조차 꿈을 꾸었을까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근본적인 걸 묻는 건 늘 가장 기본적인 동시에 막연한 일이다. 이젠 개운해진 기운으로 다시 영화를 볼 거다. 넷플릭스에 며칠 전에 공개된 '맹크'를 볼 계획이다. '세븐', '조디악', '나를 찾아줘'의 데이빗 핀처 감독이니 믿고 볼 수 있을 거다. 그도 꿈속에서 꿈을 꾸기도 할까. 나는 당분간 누구를 만나도 묻게 될 것 같다. 혹시 꿈속에서 꿈을 꿔본 적이 있느냐고.
*커버 이미지 :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