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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an 18. 2021

어색함과 침묵도 대화의 요소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카톡창 안에도 분명 공기라는 게 존재한다. 마치 실제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처럼, 카톡창에서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어떠한 무드가 형성된다. 카톡 대화 중에 무엇인가 의식된다면, 그건 뭔가 어색하고 신경 쓰인다는 뜻일 거다. 의식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가 베스트이다. 물론 자연스러움이라는 명분 아래에 한쪽만 너무 자기 흐름대로 대화하고, 타인이 그걸 맞춰주고 배려하고 있다면 그건 겉보기에만 자연스러운 풍경일 거다. 그만큼이나 너나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2019년에는 히키코모리처럼 방 안에서 지냈고, 2020년에는 과거의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재사회화에 힘썼다. 이제 보름 정도 겪어본 새해의 나는 들키지 않을 정도로 해둔 재사회화를 다시 잊어가는 기분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일 거다. 요즘은 거의 모든 일의 이유를 물으면 답이 코로나다. 코로나를 핑계로 사회화도 저 멀리 미뤄도 될까.


사람들과의 연락이 뜸해졌고, 가끔 연락을 할 때가 있다. 실제로도 자주 보고 친밀한 사이임에도 괜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상대는 아무렇지 않을 텐데, 나 혼자 어색함을 끌고 온 것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이라는 체감 시간은 상대적일 텐데, 유독 그 단어 앞에서 묘한 기분을 느낀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


몇 자 안 되는 글 앞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다들 힘든 시기다 보니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도 조심스럽다. 서로에게 어떤 액션에 해당하는 대화를 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저 서로의 말에 대한 리액션만 준비한 채 대화를 하는 기분. 카톡의 1이 사라졌지만 쉽게 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 대화창. 대화 중간에 잠깐의 침묵도 못 견디는 사람인 것처럼, 요란하게 다음 말을 떠올린다. 당장을 모면할 수 있지만, 오히려 더 긴 침묵을 부를 말을 뱉기도 한다.


현실 속 대화에서나 카톡창에서나 침묵은 대화의 한 요소처럼 자연스러울 수 있다. 다만 어색함과 침묵을 대화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연스러운 사람만이, 이러한 부분조차도 대화의 일부로 가져갈 수 있다. 어차피 회사에서나 어디선가 일하는 순간에는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운 대화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적어도 사적인 순간에서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싶다. 그 어떤 억지스러운 순간도 없는, 자연스러운 대화. 대화는 일상적이고 사소하지만, 그런 대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 말 때문에 다친 자리는 말로 회복해야 하니까.


앞으로 회사에서도 절대 억지스러운 말은 안 할 겁니다, 라고 말하기에는 회사에서는 그런 순간조차도 월급 안에 포함시켜 두었기에 용납되지 않을 거다. 월급은 놓칠 수 없을 만큼 씁쓸하고 달콤하므로 포기할 수 없다. 사적인 순간에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해봐야겠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서 침묵이 함께 하는 그런 대화가 더 어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생활의 중심은 회사원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사적인 시간으로 뭉쳐진 나니까. 


어색함도 침묵도 괜찮다고, 그렇게 느끼며 대화를 하고 싶다. 말맛이 좋은 대화, 여백조차 편한 대화. 만날 수 없다면 카톡으로라도 그런 대화를 하고 싶다. 괜히 이런 글을 쓴 김에 연락을 해볼까라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다가 닿은 연락 앞에 자연스럽게 굴어보겠다. 씹는 맛이 좋고, 소화도 잘 되는 대화를 위해서.



*커버 이미지 : 폴 세잔 '사과 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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