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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ul 22. 2021

첫 차를 타고 출근해야만 해

다양한 선택지 중 첫 차를 선택할 때

예상 못한 추가 업무


대부분의 일은 퇴근 전에 일어난다. 퇴근 전까지 여유 있게 일을 하고 있었으나 갑작스럽게 일이 몰려온다. 오늘은 재택근무이고 내일은 출근이다. 선택을 해야 한다. 이미 나는 체력을 다 소진했다. 그리고 퇴근 시간 이후에는 어떻게든 야근을 하고 싶지 않다. 내게 주어진 일이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드는 작업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단 퇴근 후 가려고 했던 발레부터 포기한다. 이번 달에 발레를 등록하고 발레 수업을 빠진 건 처음이다. 보충 수업 신청은 수업 전날에 미리 신청을 해야만 한다. 오늘 일찍 가서 다음 달 발레 수업도 등록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다니. 시간은 흐르고 있고, 수업을 빠져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이라고 생각해본다. 좀 더 일을 부지런하게 해 뒀으면 여분의 일이 들어와도 처리하기 용이했을 텐데. 그러나 내 탓을 하기 시작하면 자존감도 떨어지고, 나를 미워하게 되고 좋은 게 하나도 없다. 갈팡질팡 한다. 어쨌거나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발레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퇴근 후 해야 할 선택 중 발레는 일단 포기.


내일 보고하기까지 걸릴 시간을 계산해본다. 8시까지 출근을 하기 때문에, 출근하는 날에는 6시쯤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고 미리 도착해있는 게 속이 편하다. 발레 수업이 끝나고 오는 길에 내일 아침에 먹을 편의점 빵을 사려고 했는데, 발레를 안 가게 되었으므로 일단 편의점에 간다. 내가 좋아하는 단팥크림빵이 진열대에 있다. 잽싸게 잡아서 계산하고 집으로 온다. 집 앞에 편의점이 있어서 다행이다. 편의점 덕분에 다른 곳을 안 가게 되지만. 퇴근 후 해야 할 선택 중 내일 아침밥은 획득.


기력이 별로 없다. 계획에도 없던 일 때문에 머리를 굴려야 하는 상황 자체가 싫다. 빠른 의사결정이 필수다. 일단 파워포인트를 실행해서 장표를 만든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계산해본다. 차라리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할까. 벼락치기하던 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늦은 밤 벼락치기를 시작하려다가, 오히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했던 과거. 물론 대부분은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서 벼락치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월급의 힘은 강하다. 그리고 집보다는 회사가 더 집중이 잘 되고, 조마조마한 마음은 사무실에서 더 극대화될 거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로 결정한다. 알람을 6시에서 4시 30분으로 바꾼다. 평소에 늦게 자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습도와 더위까지 더해져서, 잠들기가 쉽지 않다. 새벽에 잠깐 깨서 시계를 보니 3시다. 꿈을 꿨다. 선잠으로 보낸 새벽.


첫 차 출근 


4시 30분,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 월급의 힘은 강하기에 일어난다. 월급날이 얼마 안 남았다. 일어나야만 한다. 어제 미리 면도를 해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면도만 해두어도 준비하는 시간이 줄어들지만, 반나절만 지나도 금방 자라는 수염이 야속하다. 안 아픈 영구제모 기술이 발명되기를 바랄 뿐.


어제 사둔 편의점빵과 사과, 영양제까지 챙겨 먹고 출근 준비를 마친다. 자기 전에 출근할 때 입을 옷 등은 챙겨놓기에 준비가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보일러 온수 버튼과 집 안 멀티탭 전원 등을 확인하고, 분리수거할 쓰레기봉투를 들고 출근을 한다. 


어제 미리 봐 둔 시간에 따라 집 앞에서 버스를 탄다. 버스는 내가 일어나기도 전인 새벽 4시부터 운영을 시작한다고 한다. 버스를 타자마자 의자에 무릎을 찍는다. 통증으로도 알 수 있다. 이건 분명 선명한 피멍이 될 거다. 무릎을 쓸어내리다 보면 나의 목적지인 지하철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차한다. 


지하철 첫 차는 5시 30분부터 운영된다. 환승과 배차간격만 순탄하다면 회사가 있는 지하철역까지 15~20분이면 도착한다. 아쉽게도 첫 차를 놓치고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 그러나 '첫 차 다음 열차'라고 글을 쓰기는 아쉬워서 첫 차라고 글을 써본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도 이게 편하다고, 뻔뻔하게 말해본다. '난 오늘 첫 차 타고 출근했다!'. 부지런해진 기분이라 괜히 우쭐하게 된다.


버스나 지하철이나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다. 대부분은 딱 봐도 일을 하러 가는 이들이다. 대학생 때는 밤을 새우고 집까지 2시간 넘게 걷곤 했다. 그때는 야시장 풍경을 자주 보았다. 남들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하루를 여는 이들이 보인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것보다 야시장을 꾸리는 이들을 보며 느끼는 게 더 많다고 느끼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밤을 새우고 야시장을 지나는 게 좋아졌다. 누군가의 부지런한 모습을 보면 몸에 남아있는 취기가 모조리 날아가는 기분이다.


밤새 놀다 온 이들보다 노동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들이 더 많아 보이는 첫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평소 같았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릴 텐데, 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내리자마자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는 플랫폼에 사람들이 몰리는데, 편하게 에스컬레이터에 탄다. 역과 백화점을 연결한 무빙워크는 출근 시간에 작동을 안 하는데, 이른 시간에는 아예 천장 불까지 꺼져있다. 얕은 불을 따라, 무빙워크 옆을 부지런히 걸어본다.


회사에 도착하니 역시나 사람이 없다. 가장 먼저 출근한 건 처음이다. 평소에도 일찍 출근하는 편에 속하긴 하는데, 오늘은 압도적으로 이른 시간이다. 근태 관리 시스템에서 출근 시간을 확인하면 뿌듯하려나. 6시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한다. 집보다는 집중이 잘 되기에 잘한 선택이라고 느낀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퇴근 전에 화나는 일이 생겼지만, 내가 대처할 방법은 없기에 그러려니 한다. 회사는 내 마음대로 순탄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회사의 속성이란 원래 그런 걸까. 내가 단단해지는 게 해법인 걸 알지만, 평생 해도 잘 안 되는 일이다.


앞으로도 첫 차를 타고 출근하는 날이 올까. 다들 부지런히 살고 있고, 나 또한 게으르지는 않다고 믿고 있다. 오늘은 일찍 잠들 줄 알았으나 퇴근하고 나면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뭔가 하고 싶어 진다. 새벽이 되어서야 잘 준비를 한다. 내일부터는 좀 더 부지런히 일 해보자고 결론을 내본다. 밥벌이는 역시 쉽지 않다. 



*커버 이미지 : Claude Monet 'Arrival Of The Normandy Train, Gare Saint-Laz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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