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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ul 27. 2021

너의 집은 1인용이야, 누구를 맞이할 준비가 안 된

타인의 눈으로 본 나의 집

계획에 없는 방문이었다. 지인에게 줄 게 있어서 집 앞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려다가, 온 김에 올라오라고 했다. 본가에서 지낼 때는 누군가를 초대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일단 가족들이 편히 쉬는 공간에 내 지인을 부르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날 것인 내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친구들은 집에 초대하지 않는 나를 '집이 성지라도 되냐고' 따지듯이 묻기도 했는데, 성지는 아니지만 광장이 아닌 것도 확실했다. 


누군가 집에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 온다고 해서 딱히 어떻게 꾸밀지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집에는 의자가 하나뿐이다. 가구 배치를 전반적으로 바꾼 뒤에 사자고 미룬 게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당장 누군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하나뿐인 의자도 사무용 의자라서, 컴퓨터를 사용할 때 빼고는 대부분 바닥에 앉아있다.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도 아직 바닥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해 먹고 나서도 굳이 식탁 대신 바닥에 앉아서 해결할 때가 많다. 


지인은 인테리어 관련해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집에 부르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일단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창문에 말려둔 스퀴지를 수납장 안에 넣고, 괜히 변기 물도 내려본다. 보일러와 냉장고가 있어서 창고처럼 쓰는 공간의 문을 늘 열어두지만, 물부터 빨래까지 쌓여있는 게 많으니 문을 닫아본다. 급하게 에어컨과 선풍기, 서큘레이터를 모두 가동한다. 비가 안 온다고 해서 창을 열어두고 갔는데, 덕분에 집에서 쾌쾌한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진짜 1인용 집이다."


생각해보니 이 집의 모든 건 1인용이다. 의자도 하나이고, 침대도 싱글 사이즈이고, 음식들도 1인분 단위로 사뒀다. 그나마 넉넉하게 사둔 수저와 포크 정도가 있는데, 정작 이것들은 나 혼자서 쓰기에도 너무 많다. 파티를 할 성격도 아니고, 코로나가 계속될 텐데 뭘 그리 많이 샀을까. 이케아에서 컵도 4개나 사 왔는데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정작 필요한 건 1인용이고, 별 실효성 없는 건 넉넉하다.


지인에게 가구 배치를 어떻게 바꿀지 물어본다. 늘 미루기만 했는데 이젠 정말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근 마켓에 이미 사둔 가구를 팔거나 하는 것도 귀찮겠지만, 내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걸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해서 나쁠 게 없다. 컴퓨터 책상이 되어버린 식탁도 얼른 정리하고 싶고, 의자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집들이 있어, 타인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된 집."


지인은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가 안 된 집들에 대해 말했다. 집도 결국 사람을 닮아서, 타인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의 집에는 그 마음이 반영되어 있을 거다. 나 또한 준비를 전혀 못했던 것처럼. 집이 준비가 되어도 마음이 준비 안 된 이들도 있을 거고. 오히려 타인을 맞이하려면 집보다도 마음이 먼저 준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게 가장 편한 공간이지만 지인이 온 순간부터는 좀 더 신경이 쓰인다. 나 혼자였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머리카락도 괜히 더 거슬리고, 책상 위에 올려둔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 방수커버도 창피해진다. 혼자일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지인은 가구를 새로 사거나 할 때 도와줄 테니 함께 고르자고 말해줬다. 고마운 말이다. 다음에 지인이 방문할 때는 좀 더 그럴듯한 집이 되어있을까. 1인용 집이 아닌 2인용 집이 되어있으려나. 누구를 불러도 잠시 머물러 가기 좋은 집이 될까. 내 마음도,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누군가를 맞이할 때 빨래건조대와 화장실 물때보다도 내 마음을 먼저 살피는 내가 될 수 있을까. 언제든 누가 와도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그런 마음.


여전히 집에는 의자가 하나다. 내 마음이 좀 더 편해지는 날, 의자를 하나 더 사야지. 1인용이 아니라 2인용도 괜찮을 마음이 되었을 때.



*커버 이미지 : Edvard Munch 'Man And Woman By The Window With Potted Pl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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