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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Jul 26. 2021

디퓨저가 없는 우리 집에는 너의 향기가 오래 남아

사람의 향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태어나서 한 번도 향수를 써본 적이 없다. 생일 때 지인에게 받은 향수가 있는데, 여름에는 땀 냄새가 날까 봐 안 쓰고, 막상 겨울이 되면 누구한테 잘 보일 것도 아닌데 굳이 향수를 써야 하나 싶어서 미루다 보니 몇 년이 지났다. 유통기한이 내년까지라고 되어 있는데, 올해 더위가 다 가시고 나면 꼭 써볼 거다. 향수가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향수 없이는 외출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것도 나름의 재미가 될 듯하다. 향수로 샤워한 것처럼 강한 향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 향수를 쓰더라도 아까워서 조금 쓰게 될 걸 고려한다면 향수를 사용하더라도 은은한 정도에 머물게 될 것 같다.


평소에 향수도 안 쓰고, 집에서도 디퓨저를 따로 쓰지 않는다. 일단 늘 창문을 열어두는 편이다. 환기에 한이라도 맺힌 사람처럼 늘 환기를 하려고 한다. 건물 1층 식당에서 올라오는 기름 냄새에 머리가 아플 때도 있지만, 창문을 닫는 동안 집안을 채우는 정체 모를 쾌쾌함보다는 낫다고 믿는다. 요즘은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틀어두느라 창문을 닫아두는데, 창문을 열어두나 닫아두나 딱히 집안 특유의 향은 없다. 


독립 전에 본가에서 살 때는 늘 향을 피워뒀다. 조금이라도 냄새가 나면 강박적으로 향을 피웠다. 절에서 가져오는 아주 보편적인 향을 피운다. 그 향이 집안에 스며든 음식 냄새를 빨리 삼켜버린다는 믿음이 있다. 집에 들어왔을 때 향 냄새가 날 때 기분이 좋다. 


독립 후에도 향을 피울까 생각해봤다. 그러나 나의 집은 좁다. 향을 잘못 피우면 재가 흩날리고, 불이 잘못 붙을 수도 있고, 아무튼 좁은 공간에 향은 썩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자취생의 모든 아이템은 다이소로 시작한다고 믿기에, 처음에는 다이소에서 디퓨저를 샀다. 가성비 인간으로서, 향보다는 용량 대비 가격을 보고 제품을 골랐다. 


디퓨저를 사고 처음에는 문 하나로 분리된 방과 거실 중 어디에 둘까로 고민했다. 음식 냄새는 거실에 머물 것이기에 거실에 두기로 한다. 환기를 시킬 때가 많다 보니, 향이 거실에 머물라 치면 밖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굳이 손을 뻗어서 디퓨저를 코에 가까이 대지 않으면 디퓨저 향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기간이 지나고 디퓨저 병을 보니 액체가 다 날아간 뒤였다. 


독립 후에 선물 받거나 해서 생긴 디퓨저가 꽤 있는데, 평소에 써야 할 텐데 초대할 사람이 생기면 그때 오픈을 해야겠다는 보여주기 식 마인드를 자꾸 발휘한다. 나답지 않은 모습을 남한테 보여줘 봐야 좋을 것도 없을 텐데. 초대할 사람도 없으면서 누군가 초대하면 무엇인가를 시작하겠다는 건 이 무슨 이상한 발상일까. 날 더 외롭게 만드는 생각일 뿐이다. 타인을 기대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 그러나 독립했다고 이런 생각이 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외로움을 만드는 일을 살림의 일부처럼 소화해낸다.


사람을 초대하기도 쉽지 않은 시기이기도 해서, 독립한 뒤에 집에 방문한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아보카도를 나눠주겠다는 같은 동네 선배나 내게 뭔가를 빌리러 오는 친구 정도뿐이다. 그때마다 느끼는 건 누군가에게는 나름의 향이 있고, 굳이 열심히 냄새를 맡으려고 하지 않아도 그 향이 오래간다는 거다. 디퓨저보다도 깊은 향이 사람에게서 난다. 대부분은 자신에게서 그런 향이 나는 걸 모른다.


사람에게는 살 냄새가 있다고 한다. 나는 나의 살 냄새를 모른다. 지난 인연들 중에는 내게 살 냄새에 대해 말해주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걸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이들이 없었다. 땀 냄새인데 그냥 모른 척 살 냄새라고 해준 건 아닐까. 집에서 늘 났던 섬유유연제 향이었을까. 헤어진 옛 연인에게 '나한테 나는 살 냄새가 뭐야'라고 물어도, 순진한 호기심이 아니라 불순한 미련으로 느껴질 거다. 독한 향에 취해서 정신이 나가도 합리화가 안 될 무례함.


"여기서 네 향이 난다."


향수를 쓰는 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어디에 갔는데 너의 향이 나더라, 네가 가고 나서도 너의 향이 남아있더라. 결국 사람은 사람을 향으로 기억하게 되는 걸까. 평소에 향에 정말 무딘 편이라고 느꼈는데, 아무 향도 없는 집에 살다 보니 향에 더 민감하게 된 걸까. 좋아해서 매일 먹는 음식 향이 상대에게서 난다면 더 잊기 힘들어지는 걸까. 요즘 매일 아몬드브리즈를 마시는데, 상대에게서 아몬드브리즈 향이 난다면?


향이 진한 사람은 집에 부르기 위험하겠다 싶으면서도, 모두에게는 각자의 향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분명 조용한 집인데, 집에서 발견된 타인의 향에 마음이 요동친다면 슬퍼질 거다. 향은 생각보다 그 힘이 강하고, 그래서 무섭다. 아니, 정확히는 향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향을 핑계로 누군가를 떠올리는 게 달갑지 않아질까 봐 경계할 뿐.


누구의 향도 남지 않을 만큼, 강한 향으로 집을 채워보자. 아니면 그 어떤 향 앞에서도 누구도 떠올리지 않을 만큼 강한 사람이 되거나. 강한 사람이 아니라 독한 사람이 더 맞는 말이려나.



*커버 이미지 : Gabriel von Max 'The Sm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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