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내시경
내가 이전에 다녔던 회사들은 사내 복지가 거의 없는 스타트업들이었다. 당연하게도 건강검진도 없었다. 내가 여태껏 받은 건강검진들은 나라에서 무료로 하는 건강검진이었다. 프리랜서였던 시기에도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무료 건강검진에 내시경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여태껏 내시경을 해본 적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건강검진을 통해 나쁜 결과를 통보받은 적은 없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건강검진이 복지 중 하나이다. 매년은 아니고 몇 년에 한 번씩 순번에 따라 받는데, 올해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생애 첫 내시경을 하게 되었다.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한 번에 하면 좋겠지만, 예약이 몰려서 그런지 위내시경은 7월에 받고 대장내시경은 11월에 받게 되었다. 어쨌거나 내 삶에 내시경 일정이 처음으로 생겼다. 달력에 내시경 날짜와 전날 금식 등을 적어두고, 알림이 울리도록 캘린더에도 적어둔다. 8시 이후 금식이라는데, 어차피 평소에도 저녁을 일찍 먹는 편이라 다행이라고 느꼈다. 추가 요금을 내고 수면내시경으로 받기로 한다. 마취도 안 하고 내시경을 할 자신은 없으므로.
건강검진 전날에는 최대한 속에 부담을 덜 주고 싶어서 가볍게 먹고 싶었으나, 눈 뜨자마자 허기진 속에 삼겹살을 넣었다. 원래는 라면을 먹을까 하다가 삼겹살을 먹었는데, 단백질이 그래도 좀 더 낫지 않을까 라는 나름의 합리화를 거친 선택이다. 저녁에는 양심상 바나나와 계란을 먹었다. 바나나 1개만 먹으려다가, 내일 아침까지 밥을 못 먹을 생각하니 괜한 보상심리가 생겨서 바나나와 삶을 계란을 몇 개 더 먹었다.
일찍 가야 일찍 끝난다. 그렇기에 일찍 누웠다. 병원이 7시에 진료를 시작한다는데 6시 도착을 목표로 5시에 알람을 맞춘다. 10시가 좀 넘어서 잠이 들었는데,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 보니 4시 30분이었다. 일찍 자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고 자서 추워서 일어났다. 추위도 건강검진에 지장이 있나. 어떤 일이 시작되면 오로지 그것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전지적 건강검진의 시점으로, 일어난 김에 하루를 좀 빠르게 시작하기로 한다.
밥 먹는 시간이 생략되니 씻기만 해도 나갈 준비가 끝난다. 대중교통 시간을 확인해보니 지하철을 5시 30분이 첫차다. 버스와 지하철을 차례로 탄 뒤에 병원이 위치한 역에 도착한다. 내 앞에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병원 쪽을 향하는 이가 있다. 설마 이 사람도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인가. 병원에 도착해보니 앞에 걷던 이와 나뿐이다. 2번이라고 찍힌 진료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본다. 시간은 6시.
7시부터 접수 시작이라는데 병원에는 이른 시간에 출근한 이들이 많다. 일찍 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까. 일찍 온 덕분에 빠르게 검사가 시작된다.
"오늘 이름이 같은 분이 계셔서, 생년월일 계속 확인할 수도 있어요."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은 참 오랜만이다. 첫 검사는 초음파 검사다. 초음파 검사 도구도 배를 누르는데 그게 참 아프게 느껴진다. 공복이라 그럴까. 밥을 안 먹으면 몸이 좀 더 취약하지 않을까. 초음파 기계로 내 몸을 들여다보고 증상을 알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초음파 했다는 소식을 자주 들려주는, 출산일이 가까워오는 같은 동네 사는 학교 선배가 떠올랐다. 나는 초음파로 아픈 게 있나 확인하고, 선배는 아기가 얼마나 건강한지 보겠지.
몸무게와 키를 재는데, 키는 예상대로 나왔는데 몸무게가 생각보다 더 많이 나왔다. 체중보다는 허리둘레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체중에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공복에도 이런 무게가 나오다니. 나이를 먹을수록 살이 잘 안 빠진다. 눈으로 봤을 때 이 정도 상태면 체중이 어느 정도일지 감이 오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이제는 내 예상보다 늘 무거운 몸무게를 지니고 사는 중이다. 다음 달에도 발레를 하기로 했는데, 발레 말고도 운동을 하나 추가해야 할까.
위내시경 전에는 액체로 된 뭔가를 먹으라고 하는데, 달콤한 시럽 맛을 닮은, 장기 복용하고 싶은 맛이었다. 마취가 잘 안 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도 과연 그럴까. 잠이 안 든다면 입을 벌린 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시키는 대로 자세를 취하고 누웠고, 눈을 떠보니 내시경은 끝나 있었다. 역시 프로의 세계다. 내 걱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프로의 세계.
검사는 몇 시간 만에 다 끝났다. 일찍 온 덕분에 남들이 도착할 시간에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검사를 하는 내내 나의 이름이 어딘가에서 불렸다. 처음에는 부르는 대로 쫓아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호명되고 있음을 알았다.
나와 이름이 같은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진 못했다. 현실에서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보니,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궁금했다. 혹시라도 건강검진 결과가 바뀌어서 나오면 어쩌지. 둘 다 건강해서, 바뀌어도 별 탈이 없으면 가장 좋을 텐데. 이왕이면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가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이 좋은 순간일 때가 많아서, 세상에 우리의 이름이 불릴 때 좋은 일들도 불렸으면 좋겠다.
성명학 앱으로 내 이름을 풀이하니 운이 보통이라면서 운이 좋은 이름으로 바꿔보라던 선배가 떠올랐다. 걱정이 많은 나는 이름의 음은 두더라도 한자의 뜻이라도 바꿔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이름의 뜻을 굳이 풀이도 안 해주는데, 등본상에 한자만 바꾼다고 팔자가 진짜 바뀌나. 걱정이 많지만 반골 기질을 가진 나는, 걱정은 그대로 품되 이름은 굳이 안 바꾸고 살게 될 것 같다.
나와 이름이 같다던 그 사람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 결과가 나올 때쯤 그 사람과 나는 비슷한 결과를 보게 될까. 나이는 내 또래였을까.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잠시 궁금해하지만, 그 호기심이 그리 오래 가진 못한다.
위내시경 하면서 잠시 기절해 있는 동안, 괜히 내가 헛소리하지는 않았을까 불안했다. 내 마음에 내가 평소에 숨기고 있던 말 같은 게 나왔을까 봐. 어차피 입이 막혀있으니 그럴 일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내시경으로 무의식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아무도 안 하려고 할까. 회사에서는 오히려 건강검진을 지원해주고, 내시경으로 직원들의 무의식을 수집할 수 있다면 조직문화나 매출 관련해서도 도움이 되긴 할 거다.
마음이 안 좋을 때는 내시경으로 마음을 들여다본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진심이 대장으로 나온다면 대장내시경을 매달 받을 자신도 있는데. 나는 나도 계속 숨기고 잘 모르는 나의 진심이 궁금하다. 나와 이름이 같은 그분은 이런 걱정을 할까. 나는 나의 위 상태보다 내 마음이 궁금하다. 병원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강한 약으로 기절시켰겠지. 건강검진으로 마음을 알고 싶을 뿐이라고요.
*커버 이미지 : Wassily Kandinsky 'Deux Cô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