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떠올린 사랑의 장면
눈을 떠보니 정오다. 오전 내내 자서 좋아진 컨디션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한다. 어떤 작품을 봐도 졸지 않을 것 같아서 극장을 선택한다. 집 근처 극장의 상영시간표와 날씨를 확인한다. 창문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소풍 가고 싶다. 연애가 끝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날이 좋으면 반사적으로 나들이를 떠올린다. 스크린으로 예쁜 장면을 보는 것도 일종의 소풍이 아닐까. 오늘의 나들이 장소는 동대문 메가박스다.
주말의 데이트가 일상이던 얼마 전만 해도 꽤 자주 왔던 극장이다. 몇 달만에 찾은 덕분에 지금은 역에서 영화관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찾기도 쉽지 않다. 결국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서 에스컬레이터로 9층까지 올라간다. 9층에 도착하니 메가박스 간판이 보인다.
극장을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영화가 아닌 추억 속 어떤 장면이다. 영화표를 발권하고 몇 분 남지 않은 상영시간을 기다리며 과거를 떠올려본다. 장면 안에 연인이었던 그 사람이 있다. 눈, 코, 입을 차례로 보다가 입술 옆에 묻은 하얀 가루가 보인다. 닦아줘야 하나 말해줘야 하나 짧은 순간에도 많은 고민을 한다.
오기 전에 도넛 하나 먹고 왔어. 뚫어져라 입술을 쳐다보는 나를 보며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한다. 고민만 하던 내겐 반가운 우문현답이다.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나는 궁금해하고, 그 사람은 사실로 대답해주는 것이 우리 둘의 연애였다.
영화 시간이 임박해서 상영관으로 들어간다. 오늘 볼 영화의 제목은 'shape of water'다. 사랑에 대한 영화라는데 물과 하얀 도넛 가루 중 뭐가 더 비유하기 적합할까. 추억이 영화를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삶과 영화가 만든 각각의 은유 중 무엇을 더 자주 떠올릴지는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