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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pr 01. 2018

영화감상에도 지구력이 필요하다

영화를 위한 근육과 감수성 기르기

대학생 때 영화잡지에서 짧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에 충무로 닭한마리집에서 잡지사에 소속된 기자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닭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기자분이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은 대학생 때 극장에 걸린 모든 상영작을 다 보는 영화광이었는데, 정작 기자가 된 지금은 마음 놓고 보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어떤 영화를 봐도 기사 작성 때문에 수첩에 내용을 적으면서 봐서 마음 놓고 극장에 갔던 기억이 까마득하다고. 기자가 되기 전까지 봤던 영화가 지금까지도 버티는 힘이 된다며, 지금 최대한 많은 영화를 보라고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삶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단어는 '영화'다. 애정과 취향은 숨기기 쉽지 않아서 많은 이들에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됐다. 영화와 쉼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함께 기억될 수 있음에 뿌듯했다. 


영화를 보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감상을 글로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여행 같다. 극장에서 '영화'라는 방대한 세계를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으로 느낄 때면 외딴 도시에 다녀온 듯하다. 영화가 곁에 있다는 게 학생 때 여행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을 거다.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 영화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첫 직장에 들어간 후 많은 게 바뀌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의도의 어리바리한 금융쟁이가 되었고, 시간이 나면 영화보다 금융 관련 텍스트를 읽느라 바빴다. 아주 가끔 영화 볼 시간이 생겨도 '빅쇼트'나 '마진콜'처럼 업무와 조금이라도 연관 있는 작품을 봤다. 입사 후 일 년 동안 본 영화가 대학생 때 한 달 동안 본 영화보다 적었다.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와 금융 둘 다 잘 모르는 어설픈 사람이 됐다.


회사를 퇴사하고 오랜만에 극장에 갔다. 스무 살 때 주말마다 갔던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본 영화인데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심하게 졸았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정적인 이야기 앞에서 무기력한 눈꺼풀을 보면서 영화에도 지구력이 있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영화감상에 필요한 지구력이 바닥을 친 상태라, 근육 없이 무리하게 역기를 드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정적인 영화를 볼 때는 작정하고 숙면을 취하고 간다. 


나의 하루를 이루는 모든 행동에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출근길에 보는 책, 회사에서 하는 업무, 퇴근길에 듣는 음악, 집에 도착해서 쓰는 글, 주말에 보는 영화까지 지구력 없이는 그 무엇 하나 지속하기 쉽지 않다. 시간과 집중력은 한정되어 있기에 점점 타협해 나간다. 예를 들어 음악과 책만 하더라도 다 챙겨 듣거나 볼 순 없어서 특정 장르만 챙기는데 그마저도 벅차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욕심 내고 싶은 분야가 영화다. 영화를 볼 때 필요한 근육을 이두부터 척추기립근까지 구석구석 다 기르고 싶다.


영화를 '분석'이 아닌 '체험'으로 보게 된 계기인 이명세 감독의 '형사'


영화에 대한 욕심이 계속해서 상승할 거다. 반면 나의 노동은 계속될 거고 체력과 시간은 점점 부족할 거다. 죽을 때까지 몇 편의 영화를 더 볼 수 있을지 계산한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 차근차근 보려고 메모장에 적어둔 영화가 지금까지 본 영화만큼 많은데 어쩌지. 모든 영화를 소화할 만큼의 감수성이 있는 지도 의문이다. 결국 몇 편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느낄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어떤 음식은 못 먹고 어떤운동은 못한다고 말하는 순간이 늘어날 거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영화만은 그 어떤 작품도 소화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살면서 나를 구성하는 많은 단어들이 깎여나갈 거다. 부디 영화만은 내 몸의 가장 단단한 단어로 남아있기를 바라며 자기 전에 볼 영화를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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