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인지 천사인지 모를 그 작은 침략자
나는 점령당한지 오래다. 벌써 7년 째 작디작은 몬스터 한 마리에게 지배당한 채 살고있다. 그 작은 몬스터의 종은 바로 ‘와와몬’. 대단히도 위협적인 치와와 몬스터의 침공은 허무할 정도로 쉬웠다. 내가 열어준건 나의 방 문일뿐인데, 어느새 나의 가장 깊고 말랑한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아니, 어쩌면 침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귀여운 외견과 항상 나만 바라보고있는 동그란 눈에 홀려있었다. 작은 몬스터가 드나들 구멍 하나를 내가 만들어줬는지도 모른다. 작디작은 나의 갈색 강아지, 귀여운 몬스터 ‘순대’는 7년째 내 세상이다.
스물스물 나도 모르게 내 세상이 된 순대. 강아지를 내 세상에 들인 게 처음이라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참 많았다. 나의 몸과 마음이 가장 취약하던 시기에 데려와서 일까? 난 순대에게 나를 투영했었다. 순대를 혼자 두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했었다. 그때의 난 내가 아니라 순대에게 포커스를 맞춘 채로 삶을 살아갔다. 그건 나에게도 순대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균형과 중심이 잡히지 못한 날들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 강아지를 외롭지 않게 하는것이 나에게 최우선이었다. 나는 제대로 잡혀살았다.
순대는 온갖 사고를 치면서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산책을 하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든 것을 먹으려 들었다. 그것을 막으려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던지. 강아지 산책이 신종 고문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집은 안전했을까? 절대 아니다. 집에서도 난 쉴 수 없었다. 휴지는 기본이고 쓰레기통에 있던 방부제, 플라스틱, 비닐봉지. 먹지 않는 것이 없었다. 맹세코 난 이 아이를 굶긴 적이 없는데. 안 그래도 혼자 두기 싫어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을 이 아이가 만들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금쪽이였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금쪽이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지고지순한 해바라기. 순대는 그렇게 사고를 치고, 항상 나만 바라봤다. 잘 때도 옆에서 등을 붙이고 자고, 내가 화장실이나 부엌, 어디를 가도 항상 따라다녔다. 책상 의자에 앉아있으면, 항상 자기를 올려달라고 그 가냘픈 다리로 서서 나를 쳐다봤다. 그러던 어느날, 숙면이 너무나도 절실해서 하루만 엄마한테 순대를 맡긴 날도 있었다. 닫힌 방 문 사이로 순대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애절하게게 발톱으로 문을 긁는 소리까지. 방 문만 닫은 건데 온 세상이 닫힌 것 처럼 서글퍼했다. 서로가 서로의 세상이었다.
그 세상에서 현실과 균형을 찾기 시작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사실 나만 잘하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순대가 내 세상을 뒤엎어도 난 사람으로서, 한 강아지의 보호자로서 중심을 잡았어야 했다. 강아지 옆에만 있어주는 보호자 말고 책임질 수 있는 보호자로 살아야 한다. 이 작디작은 몬스터는 나한테만 금쪽이지 그 자체로는 너무 연약한 존재다. 나는 이 연약한 몬스터에게 얼마나 의지하며 살아온 걸까. 나는 너에게 받은 사랑을 제대로 돌려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누구는 ‘순대 아직 7살이잖아’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키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시간은 정말 바람과도 같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찰나에 나를 지나간다. 순대를 처음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벌써 7년이라니. 또 남은 세월은 얼마나 빨리 갈까. 나는 아직 못해준 게 많은데. 내가 순대를 의지한만큼 순대에게 좋은 보호자였는지 의문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빌고 싶다. 순대의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무리 빌고 빌어도 결국에 그날은 오게 될 것이다. 순대가 없는 나의 삶.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나를 채워주던 그 아이가 없다면 나는 무너지겠지. 하지만 난. 이 작은 몬스터가 나에게 줄 예견된 고통을 받아낼 수밖에 없다. 작고 작은 나의 세상이 나를 떠나 하늘로 가는 날, 옆에서 해줄 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있으니 안심하고 가라고, 너의 눈앞에 있다고 전해야한다. 마지막 순간에도 순대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하는게 나에겐 중요한 일이니까. 이 작은 몬스터가, 아니 천사가 남길 흉터의 크기를 예상할 수 없지만 아마 평생 갈 것 같다. 그 흉터 자국이 내 세상에 천사가 다녀간 흔적이라고 여기고 평생 품에 안고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