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수영이 나의 하루를 장악했다.
작년 2월 말, 난 성공했다. 이미 몇 번 떨어진 적 있는 구립 수영장 수강신청에 드디어 성공한 것이다. 역시 수영은 겨울이라고 했던가. 바람은 살벌했지만 수켓팅에 성공한 내 가슴은 뜨끈뜨끈 아니, 후끈하게 타올랐다. 20년 만에 수영장을 가게 된다는 생각에 설렘 20, 긴장감 80, 불안감 10 도합 110%의 감정들이 나를 장악했다. 초등학생 때 수영을 배운 이후로 물과 인연이 없던 나인데,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그 바람은 나에게 어떤 일들을 겪게 해 줄까.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수영장으로 향하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수강 첫날, 수영 센터까지 100m쯤 남았을 때였을까. 겨울바람 냄새와 더불어 추억의 냄새가 나를 반겼다. 바로 수영장 냄새. 수영장의 물 비린내와 소독약 냄새가 함께 내 코로 흘러들어왔다. 설렘과 긴장감 역시 내 안에서 쿵쿵 날뛰기 시작했다. 모든 감각들이 예민해져가고 있는 그때, 갑자기 과거의 기억이 내 코를 지나 뇌를 툭 하고 쳤다. ‘여기는 그 냄새가 안 나네?’ 하면서. 매콤하고 맛있는 그 냄새. 지금의 수영장에는 컵라면 냄새가 빠져있는 것이다. 여기 수영장은 매점이 없구나! 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런 별것 아닌 생각을 하면서 수영장 탈의실에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고 수모를 쓰려는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샤워실에서 나 혼자만 수모를 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진 않겠지만 괜히 수치스러웠다. 수모를 단지 매끈한 실리콘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아니다. 그것은 미끌미끌한 괴생명체와도 같았다. 절대 내 머리에 들어가 주지 않았다. 머리를 욱여넣으려고 했으나 얼굴만이 꾸깃하고 구겨질 뿐이었다.
‘팅’하고 튕겨나가는 수모는 ‘너 머리 왜 이렇게 크니’ 하고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겼다. 수모는 찢어지지 않았고 내 마음에 생채기 하나가 생겼을 뿐.
‘현타’라는 게 이런 걸까?’ 매번 이래야 하나 걱정과 함께 약간 진이 빠진 채로 수업을 들었다. 초등학생 때 자유형과 배영을 했었으니 빨리 배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어제의 나를 내가 배신했다. 10대와 30대는 천지차이다. 30대의 난 유아용 풀 마저 한 번에 갈 수 없었다. 숨이 차 헉헉 거리면서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계속했다. 허벅지가 불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얼굴로 열이 몰리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귀 속으로 물이 차 귀가 먹먹해지기도 하고, 숨 쉬다 잘못해서 물먹기도 하는 완전 초보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 물속에 들어온 나는 앞에 있던 모든 일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수모와의 사투도, 숨이 차서 힘든 그 순간도 물 안에 있을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뛰는 내 심장소리만이 나에게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던데, 우울뿐 아니라 모든 생각들이 수용성인 걸까. 모든 생각들이 나를 빗겨나가는 경험을 했다.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힘들기도 재미있기도 한 그런 50분이었다. 수강 신청 성공하고 갈까 말까, 고민하던 과거의 나를 보며 난 말한다. ‘웃기고 있네’
뿌듯함과 개운함, 그리고 피곤함까지 같이 얹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걸로 그날의 수영은 끝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수영의 여파는 그날 하루를 다 장악했다. 집에 도착하니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두통약을 먹고 가라앉기를 기다렸지만 계속 바늘이 머리를 콕콕 쑤시는 것 같았다. 계속되는 두통에 설마 하고 네이버 검색창을 찾았다. 그리고 [수영 두통]을 검색해 봤다. 거기서 찾은 내 두통의 원인은 수영이 맞았다. 숨을 하도 참아서 두통이 생긴 것이다. 물 밖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물속에서는 코로 숨을 뱉어야 했었다. 20년 만의 수영은 이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숨만 참은 나에게 두통을 선물했다.
이게 뭔 고생이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날 하루는 저물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난 결국 수영에 빠졌다. 반년 이상 열심히 해 오리발 착용까지 갔었지만 지금의 나는 수영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생운동을 찾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수영을 하는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의 건강이 바닥을 쳤었다. 수영과 궁합이 안 좋은가 고민하기도 했다. 아마 그냥 우연이 겹친 게 아니었을까. 어찌 됐건 좋아하지만 계속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올해는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난 인근 수영장을 알아본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다시 수켓팅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작년에 성공했듯이, 올해도 내 손가락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