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취향은 진짜 당신의 것인가요?
당신의 취향은 진짜 당신의 것인가요?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며 살고 있는 걸까? 나에게 취향이란 건 생각할 필요가 없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어렸을 때에는 더 심했다. 초등학생도 본능적인 취향이란 게 분명 있을 텐데, 그때는 취향의 주체가 나 자신이 아니었던 게 많았다. 좋아하는 색깔은 하늘색이고 숫자는 5.
이렇게 말하는 13살의 나는 정말 하늘색이 좋았던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단지 god가 좋았을 뿐이다. god를 대표하는 색이 하늘색이라 나는 당연히 하늘색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만 했던 것 같다. 내가 주체가 되어 좋아했던 건 god 하나였고, 나머지는 다 내가 아닌 god와 관련된 것들을 좋아한다고 세뇌시켰던 것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무엇이 나의 진짜 취향이고, 가짜 취향인지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취향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살지 않아도 불편한 건 없었다. A와 B 중에 뭐가 더 내 취향인가, 선택이 필요할 때 생각이 길어지는 일은 없었다. 이런 선택은 나에게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의심 같은 건 없었다.
취향도 취향이지만 이런 부분은 내 성격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O가 아니면 X. 갈 거면 가고 말 거면 말고.’ 나의 성격이 취향에 대해 생각하는 걸 돕지 않은 건 분명하다. ‘뭘 굳이 생각하나. 그냥 끌리는 거 선택하면 그만이지 뭐.’라고 생각하며 20대 중반까지는 그렇게 여기며 살았다.
“이게 왜 좋아요?” “왜 이 무늬를 선택했어요?”
20대 중반, 취미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담당 선생님께 받았던 질문이었다. 처음 들어본 질문에 당황했었고 나중엔 생각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냥 좋아서요’라는 대답은 충분하지 않았다. 모자라도 너무 모자란 답이었다.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서 그냥은 없어야 한다고, 자기가 그리는 그림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그 질문이 내게는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그 질문들로 인해 처음으로 나의 취향이라는 걸 깊게 생각해 보고 정리를 해봤었다. ‘왜’라는 게 없이 그저 직감과 본능으로 이루어진 ‘창작자 희망인’이었던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질문이었다.
그 후로 나는 ‘그냥’이라고 넘어가기보다 생각을 조금 더 해보려고 노력했다. ‘왜 좋은 걸까? 난 저게 왜 싫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나를 전보다 잘 안다. 어렸을 적 god가 좋았고 라이벌이던 신화를 싫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늘색은 좋아하는 색, 주황색은 싫은 색이라고 정했었다.
유치하지만 그때는 그랬고 지금의 나는 그 두 색의 조합을 좋아한다. 하늘-주황, 파랑-주황 등 조합했을 때 빈티지 느낌이 나는 걸 좋아하고 초록색도 좋아한다. 초록색은 인생에서 좋다 싫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색인데 20대 후반에 갑자기 동네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살고 있는 강동구는 다른 곳보다 나무, 풀등 녹지가 많은 편이다. 그걸 인식하고 좋다고 느낀 게 불과 5년이 넘지 않는다. 10년을 넘게 이곳에서 살았는데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생겨난다. 세월에 따라 안 보이던 게 보이고, 새롭게 느껴지면서 나의 취향이 더 확장되어 간다.
요즘 나는 취향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자신이 더 다채롭고 명확한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요 몇 년간 움직이기 싫어서 자의로 강동구라는 어항 안에서만 살았다. 이 정도로 안 움직인 거면 어항이 아니라 장독대에 오래 묵힌 묵은지가 더 어울릴 것도 같다. 크게 변화 없는 삶일지라도 새로운 취향이 조금씩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나를 더 넓게 채우려면 지금과 같은 일상으로는 부족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 있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취향을 알게 하고 그것들이 나 자신을 이루어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는 것을. 오래 묵혀져 있던 나는 이제 나오고 싶고, 거기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약간의 자신감도 있다. 어항을 나오든 장독대에서 나오든, 나와서 바다 앞 묵은지 광어초밥 정도로는 변신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전에 없던 새로운 취향,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채우다 보면 내 삶을 풍성하게 변화시키는 게 어렵지 않을 거 같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는 않겠지. 그래도 귀찮고 어려운 그런 과정들을 겪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겪지 않은 사람보다 강할 것이다. 과정이 곧 어마어마한 무형의 자산이자 무기일 거라고 확신한다. 남의 취향이 내 취향이라고 착각하기도 쉽고 그게 뭐 대수냐 싶은 사람도 많을 테지만,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해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건 큰 경쟁력이지 않을까?
자신을 잘 모르는 상태로 ‘당신들과 난 비슷해요. 나도 그거 좋아해요.’라고 말하면서 다수의 사람들과 두루뭉술한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동질감을 만들고 싶지 않다.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 자체로, 나의 무기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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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전 제법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연어는 싫어요. 그 특유의 향과 맛이 저하고 안 맞더라고요.'
'과일은 그냥 과일로만 먹고 싶어요. 빵 하고 과일의 조합이 저는 싫어요'
싫다는 거는 기가 막히게 왜 싫은지 이유를 대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좋아하는 것에도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으로 살도록 노력하고 있는 요즘이에요!
-깊은 숲에 '서' 이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