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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May 31. 2021

맑음 뒤 폭우

오늘 아침은 지난 며칠과 달리 햇볕이 예사롭지 않았다.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빨래바구니에 쌓인 옷들이 떠올라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이런 날에 빨래를 널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니까. 오전 11시쯤 빨래를 탁탁 털어 널면서 늘 한 뼘 정도만 열어뒀던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햇빛 많이 받고 잘 마르렴! 하고 격려 하듯 건조대 위치도 신경써서 베란다 창문에 가깝게 붙여두었다.


그리고 평소대로 출근을 하기 위해 오후 5시쯤 집을 나섰다. 정신 없이 일을 하던 중 "오늘 밤에 엄청난 비가 내린다던데."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대꾸했다. 전혀 습하지도 않고 하늘이 엄청 맑았다면서, 아침에 늦잠 자지 않고 빨래를 해서 널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리고 저녁 8시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만 불지 않으면 베란다로 비가 들이치진 않을테니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9시부터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더니 바람까지 사방팔방으로 정신 없이 불어댔다. 퇴근 하려면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빨래 생각에 기분이 안 좋았다.


비가 올 줄 몰랐기 때문에 당연히 우산도 없었다. 그래도 일 하는 곳에 여분의 우산이 놓여있어 그걸 쓰고 집까지 열심히 걸었다. 얇고 공기가 잘 통해 마음에 쏙 들었던 새 운동화는 양말과 함께 빗물에 푹 젖어 무겁기만 했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몇 번이나 물엉덩이를 밟아야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집에 들어서자마자 현관에 서서 신발과 양발을 벗고 베란다로 직진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빨래는 전혀 젖지 않았다. 베란다 안으로 들이친 빗물의 흔적도 없고 그저 베란다 방충망에 물기가 방울방울 맺혀있을뿐이다.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젖은 옷을 벗고 머리를 묶었다.


같이 일 하는 친한 동생에게서 빨래는 괜찮냐는 카톡 메시지가 왔고 나는 괜찮다고 말 하는 대신 쫄딱 젖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초저녁부터 몇 시간이나 투덜댔던 게 민망하고 미안해서. 다른 사람이 내 빨래를 걱정할 만큼 내가 부정적인 기분을 다 드러내고 있었구나, 하고 반성하게 됐다. 앞으로는 꼭 일기예보를 봐야겠다. 그리고 베란다 창문은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반만 열어두어야지! 그럼 또 예상치 못한 폭우가 내린대도 반만 걱정스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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