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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May 02. 2022

우연한 위로


범계역 2번 출구 앞에 포장마차가 하나 있다. 떡볶이와 순대 등을 파는 분식 포장마차. 나는 퇴근할 때 가끔 그곳에 들러 순대 꼬치를 하나 먹거나 떡볶이 1인분을 포장해온다. 단골이라 불릴 만큼 자주 가지도 않고 매상을 많이 올려주는 손님도 아니다. 


밤 11시에 퇴근을 하다보니 웬만하면 야식을 먹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 시간까지 일을 하다보면 배가 고플 수 밖에 없다. 며칠 전 나는 그 포장마차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순대꼬치를 먹으러 들어갔다. 지하철이 도착하려면 30분이나 남았기에 느긋하게 먹을 작정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내게 순대꼬치를 건네고 본인 할 일을 하시다가 갑자기 말을 거셨다.


"여태 일 하다가 집에 가는 거야?"


'맛있게 먹어요.', '잘가요.' 이런 말만 하시던 분이 사적인 내용을 물어보시니 조금 놀랐다. 나는 지금 퇴근하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먹고 살기 힘들지?"


나는 어째서인지 그 말에 울컥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순대꼬치가 매운 척 티슈를 뽑아 눈과 코를 닦았다. 어색하게 웃으며 '네.'라고 답하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떡볶이를 계속 저었다. 포장마차 바깥엔 술취한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오가고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기다란 줄, 지하철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역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들로 거리가 혼란했다.


 천 원짜리 순대꼬치를 먹으며 받은 위로가 며칠이 지난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있다. 먹고 사는 게 나만 힘든 게 아니란 걸 안다. 세상엔 나보다 편하게 사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고 반대로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안은 내 삶이 너무 힘들면 주변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홀로 고립된 채로 내 힘듦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꽤 오랜 기간 그런 상태로 지내왔다. 그날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한 마디가 없었다면 오늘도 고된 마음으로 지하철에 올랐을 것이다.


네가 힘들다는 거 알아. 세상이 원래 그래. 너만 힘든 것 같겠지만 모두 다른 방향 다른 강도로 힘들어. 그러니 너무 주눅들지 마. 잘 하고 있어.


가끔은 이런 존재가 필요하다. 이런 순간과 말들이. 이런 말을 해주는 누군가는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고 포장마차 아주머니처럼 아예 남일 수도 있다. 혹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글귀가 될 수도, 읽기를 미루던 책의 한 구절이 될 수도 있다. 때로는 식상하고 투박한 말이 가슴을 깊게 파고든다.


며칠이나 지난 말을 가슴 속에 꼭 안고 오늘도 힘을 내보는 나처럼 누군가도 나로 인해 힘을 내는 순간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을 자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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