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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마고 Aug 20. 2017

'집사람'은 아기 낳고 집에서 '쉬니'?

아니, 우리 '바깥양반'은 책 읽을 시간도 없대.

6개월 아기가 되어가는 딸은 꼭 고양이 같다. 일단 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못 배긴다. 먹고, 놀고, 자는 것을 반복하는 것도,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대답하거나 반응하는 것도, 더러워보이는 것에 혀를 가져다 대는 것도, 잠귀가 아주 밝은 것도, 만지면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것도, 안겨 있을 때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또 둘 모두 높은 곳을 좋아한다. 아기의 경우, 엄마 아빠와 눈높이가 비슷해지고 엄마 아빠가 무엇을 하는지 잘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것 같다. 다만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위험한 것이 가까이 다가오면 민첩하고 능숙하게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지만 아기는 뭉뚝하고 서투르기에 절대적인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아기 옷은 주로 0-3개월 / 3-6개월 / 6-12개월로 단위가 나뉘기 때문에 지금이 딱 다음 단계의 옷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딸의 몸짓과 표정도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 매트에 엎어놓으면 배를 밀어 360도 회전하면서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을 손으로 잡아 입에 가져가는가 하면, 곧 기려는 듯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무릎으로 땅을 민다. 신생아 시절엔 안고 짐볼을 타면서 영화를 보거나 한 손으로 책장을 부여잡고 독서를 하기도 했었는데, 이젠 그런 건 사치스러운 얘기가 되어버렸다. 독서와 영화감상은 고사하고 , 청소라도 한 번 할라치면 내가 아기의 시야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하이체어에 안전하게 묶어둔(!) 뒤 시도한다.


이쯤 되니 휴직과 동시에 거의 매주 사들였던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 배송된 상태 그대로 책장에, 거실 테이블 위에 쌓여 있고 보고 싶어 다운 받아두었던 영화는 보지 못한 채 서버에 잠들어 있다. 아기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는 운동이 우선순위가 되는데, 그마저도 아기가 20분만에 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게 대단한 놀이라도 되는 양 아기에게 눈맞춤을 하고 재미난 소리를 질러가며 남은 운동을 계속하는 진풍경이 거의 매일 우리 집 거실에서 펼쳐진다. 책을 읽고 영상을 보는 등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에너지 외에 반대로 무엇인가를 발산하는 에너지 역시 나에게는 중요한데, 이건 아기와 둘이 있을 때는 엄두도 못 내는 일이다. 남편이 퇴근해 아기를 씻기고 재우고 난 후에는 나도 녹초가 되기 때문에 밤시간 역시 무리가 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 <타인의 삶>이라는 미니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의 활동적인 계획들을 해나가기 위해, 베이비시터를 고용했다. 베이비시터가 아기를 보아주고 내가 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을 오롯이 그 프로젝트에 바치기 때문에, 인풋 대신 아웃풋을 우선순위로 올려놓고 있는 요즘이다.


사실은 아기를 낳고 나면 이러저러한 것도 하고 그러그러한 것도 하리라고,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을 반성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일을 하던 여자가 아기를 낳고 휴직을 하게 되면, 모두가 이를 '쉰다'고 여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것이 큰 잘못이었다는 것을 아기를 낳고서야 알게 되었다. 여유시간이 날 것이다, 아기가 낮잠을 자면 자투리시간을 이용해서 내 직장인 신분으로는 못하던 자아실현을 해내고야 말리라(비장). 새로운 책에 눈을 뜨리. 영화 비평을 하리. 담백하고 감각적인 글쓰기를 연습하리. 나는 아기를 낳고 집에서 '쉬는' 사람들을 대체 어떻게 생각했던 것일까? 무슨 백수 비슷하게, 심심함을 못 견뎌 온 몸을 뒤틀고 있으리라 상상했던 것일까?


육아는 풀타임 잡이다. 그것도 온전한 집중력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요하는. 한 눈이라도 팔라치면 위험하고 뾰족하고 더러운 것을 입에 가져가거나 자기 키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질 위험에 처한다. 나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좋아하는 딸을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눈물을 짓고, 어느 새 아기방 전체에 밴 콤콤하고 포근한 아기 냄새를 킁킁거리는 그 행복하고 고된 하루 하루들. 밤이 되고 아기가 잠들고 나면 읽어야지, 보아야지, 미루어두다가 켜켜이 쌓이는 헌 새 책들. 정말 책을 읽고 싶어서 조바심이 나지만, 아기의 작은 변화라도 놓칠까, 더 조바심이 난다. 고구마를 먹었고, 단호박을 먹었고, 닭가슴살 미음을 먹는다. 이제 무엇을 먹일까, 고민한다. 새로운 것을 먹여보는 재미, 새로운 것을 입혀보고 놀 거리를 찾아주는 재미. 육아란 이렇게 몸과 마음을 부지런하게 돌리는 일이니, 밥벌이만큼이나 삶을 꽉 넘치게 채우는 시간이다. 내가 그런 시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침마다 졸린 눈을 부비면서 설레는 가슴을 안고 아기방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쉬는' 사람의 삶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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