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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마고 Aug 28. 2017

육아휴직 연장, 아기가 아닌 나를 위해.

가끔은 이기적인 선택이 모두의 행복에 기여한다

단언컨대, 내가 태어난 이후로 요즘처럼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본 적은 없었다. 아기가 0세인 2017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아기에게 엄마와 아빠가 온 세상인 데다 엄마와 아빠에게 아기가 온 세상인 이 시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 나는 (내가 빨리 직장에 복귀하고 싶을까봐) 6개월로 분절하여 내어놓았던 육아휴직에 6개월을 보태어 법적으로 보장된 1년을 다 쓰고자 한다. 그럴 수 있는 상황임에 안도하고 감사하면서도 내가 왜 당연한 것에 감사해야 하는지 서글프다. 이 결정에 아기와 양육자의 애착형성에 생후 1년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을지 안 믿을지 잘 모르겠는) 정보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80%이상은 단순하게 우리 세 식구의 행복을 위함이다. 그러니까 아기를 위한다기보다는 나와 남편을 위한 결정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렇게 충만한, 0세 아기와 34세 엄마 32세 아빠의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육아휴직 이슈를 두고 이러저러한 에피소드와 말들을 꺼내어 글을 엮어 써보고자 끄적이다가, 너무 복잡다단한 층위의 담론과 사회적 현상이 떠올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관두었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엄마는 전업주부인 자신의 삶을 '낭비한' 것처럼 말하면서 나보고 네가 아깝다며 6개월 연장하지 말고 얼른 빨리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성평등에 기여하는 삶이란 전업주부로서의 육아/가사노동도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다른 모든 노동과 마찬가지로 신성하다는 걸 알리고 동시에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육아휴직을 1년 다 쓰는 게 성평등에 기여하는 것인지, 얼른 빨리 직장에 복귀하거나 복귀하지 않더라도 어떤 형식으로든 '바깥'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성평등에 기여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시대가 여성에게 들이대는 기준은 너무나도 엄격해서, 여자는 결혼 안 하면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지랄하고, 여자가 직장이 없으면 결혼도 못한다고 그러고, 결혼을 하면 아기는 꼭 낳아야 하고, 아기를 낳으면 직장은 계속 다니면서 '역시 아기는 엄마가' 보아야지 남의 손에 키우면 안 되고, 직장 관두고 육아와 가사에만 집중하면 낭비되는 삶이고 맘충인거고, 워킹맘이라서 일을 좋아하면 아기도 안 돌보는 차가운 년이고, 어찌저찌 워킹맘으로 오래 오래 직장에 남아도 고위직에는 잘 못 가고, 고위직에 가면 독한 년이고 뭐 그런 거라서.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나는 내가 아깝지 않다. 나는 오히려 요즘의 하루 하루가 가는 게 아깝다. 이 시간이 언젠가 끝날 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까운' 내 재능은 언제든 쓸 수 있다. 과연 회사가 잘 되는 데 바치는 것이 재능을 아깝지 않게 쓰는 것인가 그러니까 정말 사회에 기여하는 것인가에 관한 의문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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