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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서울 Oct 26. 2020

가끔은 급서울행도 괜찮아

월요일 출근이 고통스런 직장인의 월요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요일에 잠깐 출근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하던가. 정읍 한 달 살기의 지루함을 치료하기 위해 주말 이틀을 서울에서 보내는 반짝 마포 살이를 감행했다. 탈서울 결심 2주만에 자발적으로 서울에 간 것이었다. 잠시 일정 변경을 한 것이라고는 하나 15년 서울살이에 익숙해진 인간에게 정읍 한 달 살기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던가 잠시 자괴감에 빠졌다. 갑작스런 정읍 한 달 살기로 멈추게 된 서울의 취미활동이 몹시도 그리운 것이었다.


서울은 갑자기 떠나는 게 제맛이다. 나의 충동스런 서울행을 부추긴 것은 KTX앱이었는데, 앱은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경로를 설정하고 터치만 하면 언제든지 빈 좌석 현황을 알려주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 대의 표를 겟하기 위해 반나절 동안 수시로 들어가 터치, 또 터치했다. 금요일 오후+저녁 서울 상경 KTX는 이토록 사람 그득했던가. 매 시간대 매진이고 좀처럼 표가 나오지 않았다. 기차 출발 15분 전에 극적으로 나온 표를 겟하고 정읍역을 향해 전력질주 했다. 다행히도 나는 시내에 있었고 정읍역까지 달리기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서울까지는 1시간30분이면 금방 도착했고, 나는 금요일 저녁 6시 기차로 정읍을 떠난 뒤 7시반에 용산역에서 내려 마포 자취방에 들렀다가 곧바로 금요일 저녁 8시반 타임 취미 수업에 갈 수 있었다.

왼쪽 정읍역과 오른쪽 용산역 풍경들. 1시간30분을 사이로 밀집도가 극과 극이다. 용산역에 내렸을 때 느껴지는 분주함이 오랜만에 기분 좋은 설렘을 주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날씨는 상당히 추웠는데, 서울의 왁자지껄한 인파 속에서 마음이 하나도 춥지 않았다.


나의 급 서울행에 애인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난생 처음 KTX탑승에 도전하는 그는 표가 전부 매진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잘 안 풀리는 회사일로 한창 바쁜 시기를 겪고 있는 애인은 말로는 이번 주말 정읍에 방문한다고 하였지만 연애 상대와의 예의차 어쩔 수 없이 온다고 말하는 눈치였다. 괜한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몸이 근질근질한 터에 그냥 내가 서울 가고 말지.


오랜만에 만난 애인은 내게 쌍화차를 사주었다.ㅎㅎ우리는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가을맞이 신메뉴로 선보인 쌍화차를 마셨다. 정읍에서 마신 깊고 진한 맛은 아니었지만 커피보다는 훨씬 좋았다. "정읍에는 쌍화차가 유명하다면서??" 인터넷에서 쌍화차 거리를 줄곧 검색해본 모양이었다. 그는 나도 알지 못한 정보를 주었다. 정읍에 쌍화차가 유명해진 이유는 쌍화차에 들어가는 한약재가 정읍에서 많이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스레 옛날부터 정읍에 차문화가 형성됐다고. 겉보기엔 인공미 가득한 정읍의 쌍화차거리가 다 유래가 있었네:)


그렇게 주말 취미수업과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쌍화차 데이트로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 나는 다시 정읍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용산역 영풍문고에서 한 주 동안 읽을 책을 한 가득 산 채였다. 정읍-서울 왕복 세 시간. 수도권 출퇴근도, 서울 끝에서 끝도, 대중교통 왕복 세 시간인데 참으로 양호한 서울 접근성이다. 주말에 잠시 서울의 텐션을 느끼고 다시 정읍으로 돌아 와 나혼자 천변을 걷는데, 그 공기의 상쾌함과 홀가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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