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열흘하고도 이틀, 고작 12일만에 지루해져버렸다. 집 주변 공원과 오솔길을 산책 다니고, 조용한 카페에서 글쓰고, 싱싱한 재료를 사다 요리해먹고, 엄마랑 밤늦도록 테레비 보고... 이런 꿈만 같은 일상이 2주도 채 되지 않아 권태롭다니. 처음엔 감동 그 자체였던 여유로운 하루하루가 이렇게 쉽게 심심해져버릴 줄 몰랐다. 탈서울이라면서, 바쁘고 복잡한 거 싫다면서 며칠이나 됐다구.
몸이 근질근질해져 오늘은 시내 구경에 나섰다. 조금이라도 번잡함을 느껴보고자 샘고을 시장에 갔다. 오자마자 나를 반기는 건 개고기 간판 ㅎ.
멀다고 생각했던 부안, 고창, 영광 서해바다에서 잡은 생선들이 가득 나와있다. 덩굴에서 방금 딴 것인지 포장지로 싸기 전의 호박이 싱싱함을 자랑한다. 저걸 깍둑썰기 해 냄비에 넣고 카레를 만들면 딱이겠다.
무엇보다 시장은 먹거리지. 올 때마다 사람들이 줄 서있는 녹차호떡, 앍. 이 시장엔 유난히 팥죽, 팥칼국수 가게가 많았는데 한 그릇에 5천원이다. 다음에 사먹으려고 꾹 참았다.
띠로리, 시장 구경을 마치고 내가 들른 곳은 어처구니 없게도 시내 스타벅스다. 며칠 전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간 동선에 오른 덕에 방역을 철저히 했다는 정읍 스벅. 굳이 이 곳을 찾아와 CGV에서 볼 영화를 검색하고 있노라니 탈서울은 할 지언정 탈도시는 못하겠구나 싶다. 그 많은 예쁜 로컬 카페를 놔두고 스타벅스에 오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가.
익숙함을 버리지 못해서, 사람구경이 하고 싶어서, 지루함을 탈출하기 위해, 그냥 습관적으로. 실패하지 않을 음료 퀄리티+컴퓨터 하기 편한 인터넷 환경+가사 없는 음악 소리+내가 지금 시류에 소외되지 않았다는 느낌... 이런 것들이 스벅이 주는 편안함이다. 몇 년 전 미국의 강원도라고 하는 미네소타 오지마을로 일주일 출장을 갔는데 거기서도 나는 시골마을 스벅에 앉아 컴퓨터를 했다. 기한 안에 작성해야 하는 문서를 작업 할 곳으로 스벅만한 곳이 없더란다.
스벅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하고 나와 들어간 곳은 시내 올리브영. 꾸준히 써온 로션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오늘은 꼭 그 브랜드 로션을 구매해야 했다. 전통시장에도 분명 로션파는 가게가 있었을텐데, 올리브영에 가서 내가 늘 써오던 그 브랜드 로션을 사야 마음이 편했다. 열흘 넘게 로컬푸드, 역사공원, 박물관 미술관 이야기 하다가 결론은 스타벅스, 올리브영, 소비는 대기업;;; 이 무슨 아름답지 못한 정읍 한 달 살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