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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서울 Oct 27. 2020

데이트 할 때 먹으면 좋은 쌍화차

정읍에 온 뒤 매일 엄마호텔 근처의 카페 두세곳을 오갔는데, 오늘은 새 분위기를 느낄 겸 걸어서 20분 거리의 시내 쌍화차거리에 나와보았다. 나란히 서있는 20여곳 전통찻집 중에 어디에 들어가야할지. 같은 쌍화차라도 가게마다 조금씩 변주를 주고 있었다. 계란 동동 띄운 수란쌍화탕, 뜨겁지 않은 냉쌍화탕... 쌍화탕과 같이 나오는 간식도 계절과일부터 각종 전통과자까지 다양했다.

 거리에 흘러나오는 콘서트 7080 음악들로 볼 때, 어떤 곳은 왠지 5060들의 계모임 성지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정읍'+'쌍화차거리'+'조용'을 쳐보았다.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있고 손님이 없어 조용해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내 폰에 저장되어있는 최근 2~3년 간 찍은 쌍화차 사진들. 엄마와의 데이트로 많이 갔다.


그동안 정읍에 올 때마다 예쁜 카페들을 찾아다니곤 했지만 쌍화차거리 한방찻집들은 젊은 감성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내엔 힙한 감성의 플라워 카페, 펫 카페, 갤러리 카페 등등 새로 생긴 예쁜 카페가 많았다. 쌍화차를 좋아하는 엄마와 데이트 할 때만 가끔 한방찻집에 갔다. 엄마는 단골 쌍화차집이 있고 계모임을 할 때나 친구들과 만날 때 종종 가신다. 난 엄마와 쌍화차집에 가더라도 쌍화차와 함께 나오는 가래떡+조청, 누룽지, 귤, 땅콩, 바나나칩 같은 간식에 꽂혔지 쌍화차 자체가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한약같은 쓴맛이고 한 겨울이 아닌 봄, 여름, 가을엔 뜨거운 차가 막 당기지 않았다. 


그런데 애인은 다르다. 정읍의 쌍화차 거리를 무척 궁금해하고, 가보고 싶어하고, 먹어보고 싶어한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내게 프랜차이즈 커피점의 가을신상품 쌍화차를 사주고는 정읍에도 이런 것이 있냐며 신기해했다. 특히 쌍화차가 남자한테 좋다고 하더라는 말을 해주니 더욱 기대 만발이었다. 매일 아침을 못 먹고 회사에 가길래 한약처럼 포장된 쌍화차 세트를 사다줄까 묻자 완전 반겼다. 쌍화차의 '쌍화'는 음양의 두 기운을 조화시킨다는 뜻에서 '둘이 짝이 되다', '서로 합치다'란 뜻이라니 데이트할 때 먹기 더없이 좋은 음식이다. 고려가요 <쌍화점>도 만두가게에서 만난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 노래다.

이디야커피 쌍화차. 정읍의 쌍화탕에 비하면 깊이가 약하지만 가성비는 괜찮다.

 

쌍화차 한 잔을 시키면 한 상 가득 사이드 음식이 나온다. 한 끼 식사가 될 정도다. 서울 인사동보다 조용하고 음식이 푸짐하고도 고퀄리티다. 유래를 생각해보면 왜 정읍에 쌍화차가게가 이리 많은 지 이해가 간다. 지황을 비롯해 쌍화차에 들어가는 각종 한약재의 주요 생산지가 정읍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 땐 정읍경찰서 앞에 쌍화차 가게가 서너곳 정도뿐이었는데 어느새 지금은 10~20곳 생겼고, 쌍화차거리가 아니라도 정읍 이곳저곳에 쌍화차 가게가 많다. 

오늘도 쌍화차 파는 시내 한 전통찻집을 7천원에 전세 내고 오후 내내 혼자 넓은 공간을 즐겼다.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없을 거라 애써 좋게 생각하지만 왜인지 텅 빈 공간만큼 마음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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