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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서울 Oct 22. 2020

걸어도 걸어도 아무도 안 만나


직장동료 중에 국내 여행 마니아가 있다. 매주 주말이면 어딘가로 떠난다. 그것도 대중교통으로. 문체부 앱을 다운 받아서 그거 보고 맘에 드는 데 골라서 다닌다고. 지금처럼 해외로 나가는 비행깃길이 막혀 못 가는 때가 아니었는데도 몇 년 전부터 그렇게 국내 곳곳을 돌아다니더라. 군산 이런 데 한 달 살기도 해본 것 같고,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안 가본 데 없는 것 같길래 하루는 반가운 마음에 물어보았다. 정읍 가본 적 있냐고.


그랬더니 친구 하는 말이... "정읍은 가볼 생각이 없는데." 지역 중소도시 돌아다니는 게 취향인 것 같았는데 좀 의아했다. 왜 가볼 생각이 없냐고 했더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고 했다. 자기는 좀 역사적 스토리가 남아있고 먹을거리가 풍성한 곳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정읍엔 봉준이형(동학농민혁명 전봉준 장군..)도 있고 망부상 언니(백제가요;;)도 있고 뭐도 있고 뭐도 있는데 모르냐 했더니, 그냥 왠지 안 끌린다고 했다.


 몇 년 뒤 다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아직도 지방에 여행 다니냐고 했더니 그렇댄다. 정읍도 가봤냐고 했더니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ㅎ 자긴 내장산밖에 모르는데 내장산은 가을에 사람이 많고 그러면 자긴 싫다고. 몇 번 검색 해봤는데 무슨 거리(쌍화차 거리)를 만들어놓기도 한 것 같던데 자긴 인위적인 거리가 싫다고;;


  정읍천변

뭐 지자체 홍보대사나 '00 방문의 해' 현수막 거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15년 만에 다시 온 고향에는 뭔가 짠하면서도 안타까운 게 있다. 적어도 예산 수억원은 들였을 것 같은 생태숲, 캠핑장, 아름답게 설계해놓은 역사공원, 집에서 10~20분이면 닿는 시립 미술관, 도서관, 박물관, 수영장, 문화예술회관... 이런 사랑스런 곳들에 사람이 없다. 걸어도 걸어도 아무도 안 만나는 산책로가 있고, 코로나로부터 너무도 안전한 밀집도 낮은 카페들이 있을 뿐.

내장산조각공원 가는 길.. 드디어 한 명 만났다.

정읍시립박물관. 코로나로 휴관 중이다.


정읍사공원에 있는 시립 미술관. 1층에 지역 예술가가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가 있다. 내가 어릴 때 저긴 시립도서관이었는데, 몇 년 전 미술관으로 바뀌고 시립도서관은 따로 지었다. 저 미술관에서 중간, 기말 고사 시험 공부하고 문제집 풀고... 수학의 정석 풀다 지치면 지하 매점에서 컵라면 사먹었던 어린 시절 그곳. 어른이 된 뒤에는 이곳에서 철마다 화가들의 좋은 그림을 감상하게 됐다. 미술관 옆에 멋진 생태숲을 조성하고 정읍사 백제가요를 모티브로 역사공원을 만들었는데, 대규모 확장 공사에도 내가 초등학생 때 놀러와 앉았던 벤치가 남아 아직 그대로 있다. 

정읍사 공원과 시내. 망부상 언니가 등불 들고 있는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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