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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서울 Oct 22. 2020

남친에게 귀농귀촌 제안한 이야기

30대 중후반에 연애를 한다고 하면 '결혼은 언제 해'를 먼저 묻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 마망과 파파가 그런 스타일인데, 이번에 오랜 기간 엄마호텔에 머물면서 조금 당황스런 순간이 있었다. 마망은 나에게 "그런데 왜 애인한테 전화가 안 오니?", "혹시 너만 좋아하는 거 아니니" 아주 그냥  팩트폭격기를 자처하셨다. 한번은 저녁을 먹다가 애인한테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옆에서 다른 일 하시던 엄빠가 갑자기 하던 일을 중단하시고 내 옆으로 와 바짝 붙어 귀를 기울여서 아주 난감했다. 엄마호텔의 장기간 기거는 이런 뜻하지 않은 불편함을 초래한다.


1년째 만나는 남자친구는 뭔가 정상가족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나와 연인이 되었을 거다. 첫 만남에서 이런저런 조건들을 묻고 따지며 아내, 엄마, 며느리 역할 잘 할 것 같은 사람을 찾는 느낌이 들었더라면 그와 나는 연결되기 힘들었겠지.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여자친구로 대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30대 중후반의 연애도 결혼과 육아를 향해 막 달리기 하는 그런 코스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정읍사공원 포토존.


그래서 남친에게 엄마호텔 방문을 강권하지 않는 성숙미를 보여주었다. ㅋㅋ 내가 고향에 내려가버리고 텅 빈 서울에 혼자 있는 애인은 주말에 나를 보지 못해 허전하다고 (말은) 한다. 그렇다면 응당 주말에 애인을 만나러 정읍 방문을 하는 것이 순서일텐데. 사십 평생 살면서 KTX를 한 번도 타본 적 없다고 하는 애인은 오리지널 서울러다. 서울에서 나고자라 지방에 머문 적 없는 신도림키즈에게 주말 정읍 여행은 마음먹기 너무 큰 일이었을까.ㅎㅎ


정읍은 온다고는 하나 당일치기로 온단다 ㅋ 하긴 엄마호텔 아니면 정읍에 마땅히 머물 곳이 없긴 하다. 남친을 정읍에 초청하기 위해 정읍의 숙박시설을 검색해보았으나 적당한 곳이 없더라. 너무 낙후되지 않은 모양새로 적당히 깔끔해보이는 곳을 찾았으나 작년에 폐업했다고 나오네. 시내 벗어난 외곽에는 몇곳의 숙소가 눈에 띄었지만 산장이나 숲속 펜션 같은 곳으로 작심하고 등산 휴양 목적으로 온 이들에게 적합해보였다. 에어비앤비에 들어가봐도 정읍 시내에는 호스트가 없었다. 열성으로 찾아보면 한 곳 정도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정읍 시내+내장산 절까지 1박2일 코스에 괜츈한 현대식 숙소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저녁 산책길 무인모텔은 왠지 우리들의 취향이 아니었다. 맘 같아선 비교적 시내와 가까운 엄마호텔 빈 방 하나를 에어비앤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서울에 있는 내님에게 달님이 비춰주겠지^^ 정읍사 망부상 언니와 같은 마음으로 지내는 요즘, 남친에게 정읍 귀농귀촌을 제안해보았다. 서울에 아파트 평균 매매가 10억이고, 기획재정부 장관도 전세를 못 구한다는 서울에서 우리는 어떻게 결혼을 계획할 것인가.


 정읍 와서 살자고 해봤다. 정읍시청 홈페이지에 있는 인구유입서비스-귀농귀촌지원 코너를 남친에게 카톡으로 찍어 보내주었다. 농림부 귀농교육 100시간 이상 이수해야 하고, 귀농한지 1년 이상 지나야 하고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우리 둘의 일자리가 서울에 있으니 우리에게 정읍에 산다는 건 직업의 전환 그리고 그로 인한 리스크도 감당할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오리지널 서울러 애인에게 전북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한 달 전 다사랑치킨을 먹여보았다. 데이트 하다가 마침 여의도 근처에서 다사랑 치킨 가맹점을 발견하고 시켜먹었던 것이다. 다사랑치킨은 익산기업이고 전주를 비롯해 전북에 가맹점이 많다. 하지만 전북을 떠나온 뒤 교촌, 굽네, 비비큐 이런 것들만 먹었지 다사랑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다사랑과 비슷한 시기 창업한 구미기업 교촌치킨은 글로벌기업이 되어 요즘 상장도 한다는데, 다사랑치킨도 분발하라.


 짭쪼롬하면서도 버터 풍미가 가득한 맛. 서울로 떠나온 뒤에도 어릴 적 치킨 맛이 그리울 때 다사랑치킨 그 감칠맛이 가끔 생각난다. 10대 때 전북대 다니던 언니를 만나러 전주에 가서 언니에게 얻어먹은 그 치킨. 그렇게 다정한 스타일이 아닌 언니가 먼 곳에서 온 동생을 챙긴다며 사준 치킨 한 마리. 2000년대 초반엔 전주에 가면 제일 번화가에 다사랑치킨이 있었고, 전주의 대학생들은 다 거기로 모여 치맥을 했다. 지금도 정읍 번화가엔 다사랑치킨이 있다. 이번 주말에 애인 오면 또 먹여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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