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과 행복의 씨앗, 모든 건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01┃고양이 화장실
고양이는 모래 위에 배변을 한다. 그리고 손으로 모래를 열심히 덮어서 배설물을 숨겨둔다. 그 후, 집사들이 모래를 파내서 그들이 숨겨둔 배설물을 찾아낸다. 집사들은 모래에 뒤덮인 고양이의 대변은 맛동산, 액체와 모래가 닿아 둥그렇게 뭉쳐진 소변은 감자라고 부른다. 나는 매일 이것들을 캐내는 작업을 한다.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고양이의 맛동산을 캐낼 때가 그렇다. 뽀얀 두부로 만든 입자가 꽤나 큰 모래를 파헤치고, 맛동산 한 덩어리를 찾아낸다. 그런 행위를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캐낼 것이 없어진다. 그래도 조금 더 뒤적거린다. 그러면 소변이 살짝 묻어 뭉쳐 있는 작은 감자 덩어리가 보인다. 손톱보다 작은 크기여서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보인다. 별거 아닌 듯하여도, 시간이 지나면 이런 것들이 쌓여 악취가 생겨난다. 그때는 찾으려 해도 찾기 힘들다. 악취를 없애기도 난처하다. 이미 다른 멀쩡한 모래 입자에 냄새가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때는, 결국 모래 전체를 갈아내는 대작업을 해야만 한다.
생각이 많아질 때가 있다. 어떨 때는 고양이 화장실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기도 한다. 그 앞에서 유독 멍해지곤 한다. 계속해서 모래를 뒤적거린다. 더 이상 캐낼 것이 없어도, 맥아리없는 손가락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초점 없는 눈알은 허공을 향하고, 의미 없는 손놀림은 반복해서 모래 속을 헤집는다. 손은 현실에 있지만 시선은 그곳에 없다. 시선은 나의 심연 속에 뭉쳐 있는 작은 감자 덩어리를 찾고 있다. 너무 작아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닌지, 유심히 들여다본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런지 찾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악취가 올라오는 거 같은데, 이 덩어리들은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배설하지 못한 감정들, 그것들이 쌓여 어딘가에 파묻혀 썩어가는 감자 덩어리. 이래서 감정은 그때그때 배설해야 하나보다. 그렇게, 나는 한참을 고양이 화장실 앞에 앉아 의미 없는 손놀림을 반복한다.
┃02┃박스 쪼가리
베란다에 달린 고양이 출입문. 그렇게 쓰고 냥구멍이라 읽는다.
냥구멍은 내 방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 고양이 화장실이 있다. 나는 하루에 두세 번씩 베란다에 나가서 이들의 배설물을 채집한다. 그렇다. 베란다는 내가 노동을 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런 날이 있다. 마음이 물에 젖은 수건마냥 축 처져서 무겁게 가라앉는 날. 그런 날은 사소한 자극에도 감정이 요동치기 마련이다. 그렇게 요동친 감정은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나의 마을, 혹은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마을을 집어삼켜 버리기도 한다. 그날도 그랬다. 쌀가마를 등에 얹은 듯, 한껏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워주러 베란다에 들어갔다. 이런. 온 사방에 모래가 튀어있고, 화장실 벽에는 맛동산 찌꺼기를 마구 묻혀놨다. 평소에는 이런 일이 잘 없는데, 왜 하필 오늘이니. 사실 별일도 아니다. 근데 그런 별거 아닌 일들이 사람을 무너지게도 하더라. 너덜너덜해진 머리끈은 살짝만 당겨도 툭 끊어지는 것처럼.
그래서 해봤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러 갈 때 보게 되면, '맞다!' 싶어서 허탈한 웃음이라도 피식- 하고 새어 나오도록. 그냥 조금 오려낸 박스 쪼가리에, 검정 인펜으로 하찮은 고양이 얼굴 하나 그려놓는 정도일 뿐이다. 근데 이런 별거 아닌 일들이 또 삶을 살아가게도 하더라.
언제부턴가 이렇게 일상 속 곳곳에 내가 좋아하는 걸 하나씩 심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저런 것들의 힘을 무시하던 사람이다. 저까짓 게 뭐가 되나? 근데 저까짓 게 모이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더라. 새우젓과 계란이 만나서 뜨끈하고 부드러운 계란찜이 만들어지듯이 말이다. 나는 갓 끓인 퐁신퐁신한 계란찜을 좋아한다. 찬 기운이 가득할 때, 그걸 먹으면 몸이 싹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박스 쪼가리도 그러하다. 냥구멍 위에 붙어 있는 고양이 얼굴이 그려진 박스 쪼가리. 네가 가진 잠재력을 믿고, 미래의 나를 위해 너를 남겨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