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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장난감

오만가지를 가져다줘도, 네가 좋아하는 건 보잘것없는 거더라

by 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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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라운 털옷을 입고 몰랑거리는 살성을 가진, 귀가 뾰족한 생명체. 우리는 그들을 '고양이'라 부른다.

나에게는 심히 사랑스러운 두 고양이가 있다. 이들은 외모도, 성격도, 식성도, 그리고 하다못해 노는 법도 전부 다 다르다. 한 녀석은 성격이 무딘 편이고, 또 한 녀석은 제법 까탈스럽다. 오늘은 이 까탈스러운 녀석의 장난감 취향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 보겠다.




까탈이의 장난감 취향은 왜 까탈스럽느냐

강아지 하면 산책, 고양이 하면 사냥놀이다. 그만큼 고양이에게는 놀이 시간이 중요하다.

나 역시 두 고양이의 어엿한 집사로서,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장난감을 가져다 바친 경험이 있다. 이제부터 까탈스러운 한 녀석을 일명 '까탈이'라 부르겠다.


까탈이는 길 생활이 길었다. 녀석은 그 골목에서 한따까리 하는 수컷이었다. 살집이 아닌 근육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몸, 적당히 수려한 외모, 그리고 날렵한 사냥 실력과 냥냥펀치 실력으로 늠름하게 골목을 거닐곤 했다. 아, 골목대장은 따로 있었다. 그 녀석은 덩치가 산만 하고 얼굴 또한 달덩이만큼 퉁퉁해서 누가 봐도 대장이기도 했거니와, 동네 암컷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었다. 까탈이는 달랐다. 사람으로 치면, '잘생긴 싸움짱 카사노바'라고나 할까. 내가 사료를 챙겨서 까탈이를 찾으러 나가면 종종 마주하게 되는 모습은, 바로 그의 교미 장면이었다. 녀석의 짝짓기 상대는 한결같이 아무 무늬가 없고, 온몸이 새까만 암컷 고양이였다. 아무래도 까맣고 매끈한 여자가 이상형인가 보다.


이렇게 인기쟁이인 까칠이는 의리 또한 남달랐다. 나는 늘 집 앞에 고양이 밥을 챙겨주었고, 밥그릇을 가장 잘 비우는 녀석이 까칠이였다. 비우기만 하느냐, 비운 만큼의 은혜는 반드시 갚아내는 녀석이다. 햇볕이 따사로운 어느 주말 오후, 현관문 앞에서 녀석이 구슬픈 목소리로 애타게 울어대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 터진 게 아닌가 싶어 얼른 문을 열자마자, 그야말로 혼비백산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갓 잡은 신선한 비둘기를 물고 들어온 까탈이. 비둘기는 하체가 없었다. 녀석이 비둘기를 입에 물고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비둘기 몸에 매달린 내장이 바닥에 질질 끌려 시뻘건 자국을 남겼다. 게다가 아직 숨이 붙어 있어 날개를 파닥거리기까지... 나는 비둘기를 잡겠다며, 까칠이는 그걸 놓지 않겠다며 온갖 소동을 피우곤 했다. 종류도 다양했다. 어떤 날은 비둘기, 어떤 날은 생쥐, 가끔은 벌레를 물어오기도 했다.

하나의 의문이 있다. 이왕이면 온전한 먹이를 구해올 것이지, 왜 항상 반이 잘린 먹이를 대령하는 건지. 혹시 신선한 고기를 차마 모른 체할 수 없어, 반은 녀석이 뜯어 먹고 반만 가져온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추측을 하고 있다.


어쨌거나, 이렇게 길 생활을 오래 하며 남다른 사냥 실력을 뽐냈던 까탈이. 직접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실제로 사냥을 해왔던 까탈이는, 인간이 만든 고양이의 장난감에 까탈스럽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까탈이 인생, '제2막'이 시작되다

한때 골목에서 이름을 날렸던 까탈이의 집 생활이 시작되었다.

수컷의 향기를 풍기며 화려한 청춘을 보내온 까탈이 인생의 '제2막'이 열린 것이다. 집 생활은 아주 평온했다. 원할 때마다 배를 두둑이 채울 수 있고, 추운 겨울에도 온몸을 뜨뜻하게 지질 수 있고, 녀석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는 사람도 없었다. 또, 살기 좋은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다른 고양이들과 난폭한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지루하다는 것이다.


험난한 전쟁터를 누비던 까탈이의 세상은 생동감이 가득 넘치는 곳이었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던, 또 그만큼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던 세상. 녀석은 몰랐지만, 그 세상은 곧 파괴될 예정이었다.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된 까탈이의 터전에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가구가 자리를 떠났고, 더 이상 집 앞에 밥을 챙겨주는 이들이 없었다. 황폐해진 거리는 그들에게 치명적인 각종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일부 인간들의 모진 마음이 모여들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이미 많은 생명이 숨이 멎어가고 있었다. 그런 곳에 까칠이를 남겨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까칠이와 일종의 거래를 시도했다.


- 내가 다시 너를 찾아갔을 때, 네가 날 따라오지 않으면 널 내버려두고 날 따라온다면, 나는 널 납치해 올 거야. 그건 네가 선택한 거야. 알아들어?


물론 알아들을 리 없다. 그리고 이 거래는 약간은 불공평하다. 나는 까칠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가지고 갔기 때문이다. 까칠이의 삶에 끼어들게 된 것은 미안하지만, 녀석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만일 알았다면, 녀석도 같은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을 거라 생각하며, 그렇게 까칠이를 납치하여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의 몰골을 보니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날, 까칠이와 나의 모종의 계약이 성사되었다.




지렁이, 깃털, 와이어, 쥐돌이, 통통볼, 카샤카샤 붕붕

까탈이의 집 생활 적응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 한 달은 하루 종일 울부짖었으며, 이불에 오줌 테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자, 녀석은 언제 길 생활을 하던 고양이였냐는 듯 이곳이 아주 제 집인 양 행동하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이렇게나 따뜻한 걸 좋아하는 녀석이 밖에서 어떻게 버텼나 싶다. 다만, 한 가지 충족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까칠이의 사냥 욕구이다.


왠지 무기력해 보이는 까칠이. 그때부터 날렵한 사냥꾼 까탈이의 사냥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당시 한낱 알바생에 불과했던 나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각종 장난감을 구매했다. 종류도 다양했다. 지렁이 장난감, 깃털 장난감, 와이어 장난감, 쥐돌이, 통통볼, 그 유명한 카샤카샤 붕붕까지. 고양이 장난감의 세계가 이렇게나 거대하다니.

지렁이 장난감은 막대기 끝에 긴 줄이 달려있고, 그 줄 끝에 지렁이 인형이 매달린 장난감이다. 막대기를 흔들 때마다 지렁이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처음에는 까탈이도 마구 달려들었다. 얼마 못 가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다음 장난감, 바로 깃털이 매달린 막대 장난감이다. 이것 역시 처음에는 공중제비를 돌며 잽싸게 낚아챘지만, 몇 분 만에 빠져버린 깃털 덕에 딱 삼 분짜리 장난감으로 남게 되었다.

다음은 와이어 장난감이다. 앞의 두 장난감과 비슷하지만, 줄이 아닌 팽팽한 와이어가 달린 만큼 장난감의 움직임 또한 달랐다. 살짝만 흔들어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까탈이 역시 꽤 오래 가지고 놀기도 했다.

이번에는 고양이 장난감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기로 유명한 '카샤카샤 붕붕' 세트! 이름도 평범하지 않다. 카샤카샤는 일반 막대 장난감에, 실제 곤충과 비슷한 느낌이 들게 하기 위해 비닐과 비슷한 안심 필름으로 만든 날개를 달아놓은 제품이다. 막대기를 흔들어댈 때마다 이 날개가 펄럭이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에 고양이들이 미친다. 까칠이 역시 한 때 비둘기를 사냥하던 한 마리의 맹수가 되어, 역동적인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카샤카샤는 오랫동안 까칠이의 사냥감이 되어주었다.

그 외에도 형태가 다른 각종 장난감이 있다. 쥐돌이, 통통볼 등의 것들은 조그마한 쥐 모양의 인형과 양모공 같은 것들이다. 내가 던져주면 녀석이 잡으러 가기도 하고, 혼자 굴리면서 놀기도 했다. 이것들 역시도 꽤 오래 가지고 놀았다. 고가의 제품으로 넘어가면 혼자 움직이는 장난감들도 있는데, 이건 까탈이의 노후를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었다.


그렇게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고 까탈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평범한 장난감으로는 녀석의 흥미를 자극할 수 없었다. 많은 장난감을 사다 받쳐도 금방 시들해지곤 했다. 이제는 고가의 제품으로 넘어가야 하는 순간이 온 건가. 나는 움직이는 장난감을 하나 구매해 보았다. 그런데 딱 오 분 가지고 놀다 외면해 버리는 게 아닌가. 까탈이, 너 정말 까탈스러워졌구나.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점점 녀석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찾는 일에 흥미가 떨어졌다. 결국, 원래도 잠을 많이 자던 까탈이의 수면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하면서도, 한 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오만가지를 가져다줘도, 네가 좋아하는 건 보잘것없는 거더라

까탈이와 함께한 지도 어느덧 칠 년 반이 되어간다.

많은 것이 변했다. 중간에 까탈이에게 동생이 생기기도 했고, 당연히 나의 애정은 두 갈래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 후, 직장 생활에 치여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 나는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졌다. 게다가 나는 한동안 직장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는 곳인 탓에 본가에 녀석들을 맡겨놨다. 그러면서 점점 녀석들은 내 눈에서 멀어져갔다.


작년, 나는 가장 바쁘게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잠시, 아니 꽤 오랫동안 쉴 생각을 가지고 저지른 일이기에, 모든 짐을 챙겨 본가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마주한 녀석들은 통통한(한 놈은 뚱뚱한..) 잠만보가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제는 나이가 꽤 들어버린, 나의 아픈 시절까지도 함께 했던 날렵한 사냥꾼 까탈이가 이토록 무기력해진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주인이 애정을 주지 않는 식물은 시들기 마련이다.

백수는 시간이 많다. 이제부터 백수의 목표는 까탈이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차근차근, 여러 시도를 했다. 저렴한 것부터 나름 고가의 제품까지, 물질적인 요소로 녀석을 유혹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썩 오래 가지 못했다. 생각을 해보았다. 까탈이가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아! 내가 왜 그걸 잊고 있었지? 인간은 정말 망각의 동물이구나.


까탈이가 꾸준히 반응하는 게 있었다. 설명하기에도 참 허접한데, 바로 휴지나 종이를 꽉 꾸겨 콩알만 하게 만든 종이볼이다. 다른 건 다 금방 질려도, 저것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시도해 봐야지.

이 놀이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우선, 휴지를 두 칸 정도 뜯는다. 그리고 두 손으로 꽉 꾸기고 뭉쳐서 작은 공으로 만든다. 그걸 까탈이의 코에 가져다 댄다. 그러면 까탈이가 냄새를 맡으면서, 촉촉한 코를 휴지공에 비벼댄다. 이윽고 살짝 축축해진 휴지공은 잘 흐트러지지 않는 공의 형태가 되고, 녀석의 냄새가 밴 장난감으로 재탄생된다. 나는 이 공을 던지기 전에, 입으로 팔십 퍼센트의 공기가 담긴 소리를 낸다. 슈슈슉- 슈슈슉- 이런 소리를 내면서 까탈이의 눈앞에서 공을 쥔 손을 천천히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가 잠시 멈추고, 멀리 던진다! 까탈이가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리고 그 공을 둥그런 솜방망이로 탁 쳐낸다. 내가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패스'이다. 이제 내가 받아 쳐줘야 한다. 똑같이 손으로 녀석에게 툭 던져준다. 함께 움직이며 서로 연이은 패스를 이어가는 것, 이것이 이 놀이의 규칙이다.


까탈이가 좋아하는 거, 사실 별거 없었다. 나도 몸을 움직이고,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교감을 하고, 그렇게 녀석과 내가 '함께'하는 놀이. 까탈이는 나와 함께 노는 게 가장 즐거웠다. 내가 몸을 움직이기 귀찮은 마음에, 이 놀이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치부해 왔나 보다. 그래서 기능이 좋은 장난감, 더 특이한 장난감을 찾다니며 그 자리를 대체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의 애정과 헌신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서. 까탈이가 무기력해진 것은 단순히 노화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은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는 일이었다.

몸을 뒤로 쭉 기대고 앉아서 팔만 흔들어대면 되는 장난감, 혼자 알아서 움직이는 장난감. 이런 좋은 장난감들이 왜 빨리 질렸는지 알겠다.

오만가지를 다 가져다줘도, 결국 네가 좋아하는 건 보잘것없는 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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