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월의

302. 마지막밤

by Defie

평생을 반추할 일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유난히 힘들었던 시기와

제일 기억에 남는 시기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듯 하다.

너무 힘이들었어서 잊고싶었던 걸까?


시월의 마지막밤을 그간 40번도 넘게 겪었을텐데

아이가 6살,5살... 그 이전의 시월은 기억이 나질않는다. 무사히 할로윈파티를 끝내고 작년 이전의 시월의 마지막밤을 소환하는데

내 기억은 13년도 전의 일본에서 살기 시작한지 한달째되는 시월의 마지막밤으로 향해있었다.


썸머타임이 적용되어서 그런가

바로 옆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하늘은 한국봐 조금 더 짙은 파란색이었고 칠흑같은 밤은 더 빨리 찾아왔었다.

아직 일본생활에 적응이되지 않았던 나와 룸메이트는 할로윈파티가 한창인 그들무리속에는 끼지 못하고 그래도 뭔가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지 못한채 집 근처 조용한 이자카야에 들어갔었다.


노부부가 하는 듯한 작은 이자카야,

기본안주로 양배추샐러드가 나왔고,

나와 동행인은 맥주와 닭꼬치 몇개를 주문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소소하게 시월의 마지막밤을 보내는데,

양배추샐러드 안에 아무런 소스가 들어있지 않은 것을 발견,

찍어먹을 장도 없어서 주인 할머니를 불러서 '소스가 없냐'고 물었다.

그 때 되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천천히 씹으면 단 맛이 나요"

할머니가 손주에게 이야기하듯 상냥함이 들어있는 말투에

100% 이해는 못했지만

대략 어떤 뜻인지 알것 같아서 그냥 '수긍'한 채 남은 술자리를 즐겼었다.


그렇게 시월의 마지막 밤은 아주 컴컴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양배추와 함께 지나갔었다.


그 이후로 양배추를 보면 가끔 그 때의 그 주인할머니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몇 번 우스개소리로 이야기하면서 웃곤 했지만

이제와서 다시금 생각해보니

그 본연의 가지고 있는 '맛'을 제대로 음미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던 것 아닐까..?

그 때와 지금의 나 또한

속도가 아닌 꾸준함과 천천히로 무언가를 음미해가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물론,

그냥 소스가 떨어져서 둘러대셨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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